변화의 공덕
변화의 공덕
  • 거제신문
  • 승인 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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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시조시인
태어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것 또한 정리(正理)다. 쉽게 말해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역시 죽음이 왜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자기가 반성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반성의 시작이 없는데 결과물이 어찌 오겠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그릇된 일을 윽박질러 고쳐보았자 헛일이 되는 셈이다.

하물며 처단과 단죄는 별도의 상황이 되고 만다. 이런 일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상태와는 다른, 그것은 아마 정치적이거나 아니면 어떤 근거의 소산물이라 하더라도 필요에 의한 전문성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사실과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국면이 반드시 인간생활에 있게 마련이다. 다시 태어나기로 돌아가보면 여기에는 성장의 길이 놓여있다. 그러므로 '반성하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이다.

세상에는 변화하지 않고 머무는 일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뒤로든 앞으로든 변화해가는 것이다.

멈춤(정지)은 그만큼 소모와 갈등을 빚어온다. 변화는 끝내 재미있는 일이고 풍요로운 시대로 옮겨놓기도 한다. 풍요의 미덕은 가치 있는 세계의 지향일 것이다.

꽃과 그 중에서도 란(蘭)의 향기는 누구에게나 그윽한 심정의 발현을 도모한다. 이러한 란(蘭)중 명품란의 대부분은 극히 란의 변이종(變異種)에서 태어나고 있다.

명품란이 되기 위한 이루 상도하기 힘든 변화의 역경을 우리들은 깨달을 수가 있다. 그것은 변이종명품란(名品蘭)의 진통(아픔)의 역사와 더불어 안으로 간직한 최고의 환희일 것이다.

세사의 허다한 일을 고매한 란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우리들의 삶은 변화의 수용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변화와 변신의 취향은 어쩌면 인간욕망의 모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이들이 변신과 필살기의 영웅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어른들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변화의 실체는 이제 여러모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크나큰 탄생의 능력이 아닐까. 우리들은 평화통일을 원하고 정치 사회 경제의 획기적인 부를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이러한 풍요로운 자리가 저 심저에 닿아서 내부적인 변화로 승화될 때 모든 행운은 가능하다.

진정한 변화와 변신을 모색하고 적극적인 노력이 따를수록 소망의 대상이 따라올 것이다.

이미 내부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적 변화는 수 없는 시대적 희생과 확신을 거쳐 세계의 모범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한가지 명백한 일은 북한의 세습 내지 주체주의는 이러한 일이 강철표피로 굳어가서는 안 된다. 내부 변화의 용광로가 진정한 기물의 조형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변신과 변화의 용광로가 내부에서 분출할 수 있는 믿음이 북한의 정체성이 되어가고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면을 바라보는 변화의 절대적인 능력을 다행히 우리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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