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력이 뛰어나서 문제를 보자마자 척 답을 적었으면 얼마나 예쁠까만은 그게 아니라 그냥 문제도 읽지 않고 답을 찍은 것이다.
그나마 자기 이름이라도 적어 넣고 엎드리는 놈은 다행이고, 이름도 적지 않고 처음부터 아예 엎드려 주무시는 학생 분도 계시다. 하도 기가차서 가서 깨워보니 평소에 내가 예뻐하던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그 학생은 평소 매우 성실한 학생이다. 그 학생이 청소하는 구역을 맡고 있어서 아는데 그는 맡긴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고 꾀를 부리지 않고 모범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그런 학생이 시험지를 앞에 놓고 같은 번호를 쭉 그어대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무리 성실해도 그렇지 공부 좀 하지. 갑자기 그 학생이 확 뒤처져 보이고 찌질해 보였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시험을 마치고 다른 교사에게 물으니 지난번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 그 학생이 춤을 추는 것을 못 봤냐고 그 교사가 반문했다.
"아니, 봤는데. 그럼 그 학생이 바로 그 나비처럼 그렇게 훨훨 춤을 잘 추던 그 애?"
나는 그제야 그 학생을 다시 기억했다. 무용 대회에 나갔다하면 상을 받아오는 그 학생이 바로 그 학생이었다. 비록 공부는 좀 떨어지지만 춤이라하면 대도시 학생 못지않게 잘 추는 그 학생. 언젠가 우리 교사들은 그 학생의 춤을 보면서 감탄하고 우리끼리 말하길, "쟤는 정말 타고난 춤꾼이야. 쟤는 공부보다 저 길로 나가면 성공할 거야"라고 했다.
요리 잘하는 놈은 요리시키고 노래 잘하는 놈은 노래시켜 학생 개인의 재능을 키워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도 났다. 그게 언제라고 벌써 잊어버리고 공부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는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공부를 매우 잘 하는 학생도 있지만 공부를 못하는 애도 있다. 그러면 공부를 못하는 애라고 해서 다 게으르고 모든 것을 다 못 하냐하면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밝고 건전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학생들도 많다. 정말로 탁월한 재능과 능력이 있는 학생들도 무수하다. 교사인 나도 탄복을 할 정도로 운동을 잘 하는 학생도 있고 그림을 기가 막히게 그리는 애도 있다.
그런데 학교나 가정에서 공부 잘하는 애를 최고로 꼽으니 성적이 떨어지는 애들이 스스로 열등감과 패배감에 휩싸여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고 스스로를 포기해버려 그 창창한 앞날을 어두운 열등감의 구름으로 덮는 것이다.
얼마 전에 고3 남학생이 1등을 재촉한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방치해 두었던 사건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그 학생으로 하여금 엄마를 살해하도록 그렇게 끝으로 몰아간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학생을 성적으로 평가하고 공부 지옥으로 내몰려 했던 나를 어느 기자가 쓴 책의 서평 한 꼭지로 무지 반성해본다.
'모든 희생을 치르며 공부시켜 의사를 만들어 놨더니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를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 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연락이 끊긴 아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