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태동…불황 여파로 80년대 '출항'
73년 태동…불황 여파로 80년대 '출항'
  • 거제신문 기획취재팀
  • 승인 20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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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정체성과 만나기⑧]에필로그 - 조선해양관광의 도시 거제도

대우 - 79년부터 본격적인 공사, 바다 40만평 매립 등 '악전고투'
삼성 - 77년 우진조선 인수, 83년 삼성중공업 단일체제로 '출범'

▲ 1973년 10월11일 열린 옥포조선소 기공식 모습.

오일쇼크로 옥포조선소 난항…대우그룹, 78년 인수 후 '급물살'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었던 거제는 1970년대 중반, 두 개의 거대 조선소가 건설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는 당시 정부가 1973년부터 추진한 제3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이었다. 제3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은 우리나라 경제의 중화학 공업화를 위해 조선, 기계, 자동차 부문을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이 같은 시책에 따라 같은 해 5월 옥포조선소 건설계획이 확정됐고, 같은 해 10월 대한조선공사를 사업주체로 1,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조선소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옥포만을 매립해 총 330만5,700m²(100만평)의 부지에 신조용 100만DWT급 도크 1기, 15만 DWT급 선대 1기, 50만 DWT급 수리도크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옥포조선소는 착공 직후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1973년 말 일어난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침체되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소 건설 후 수주물량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과 국내·외로부터 건설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대한조선공사는 1976년 건설공정 30%에서 중단되고 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대한조선공사는 옥포조선소의 사업성과 건설공사의 재개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다행히 '장고(長考)끝에 악수(惡手)'라는 말은 옥포조선소에 해당되지 않았다. 정부가 조선공업의 경우 대한민국 실정에 적합한 산업으로 향후 조선경기 회복 시 국제경쟁력이 충분할 것으로 판단, 사업주체 변경을 확정한 것이다. 결국 1978년 '대우그룹'이 옥포조선소의 사업주체로 결정되면서 조선소 건립사업은 탄력을 받게 된다.

옥포조선소 인수를 결정한 대우그룹은 1978년 9월26일, 자본금 70억원으로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인다. 특히 정부 및 대한조선공사와 인수인계작업 시 옥포조선소를 정부 측 '한국산업은행'과 '대우그룹'의 공동 출자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조선소를 산업기계까지 복합 생산하는 종합기계공업 단지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합의를 이끌어 낸다.

마침내 폐허상태에 있던 옥포조선소 건설현장은 1979년부터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바다 40만 평을 매립하고, 육지 80만 평을 포함해 총 120만평의 부지를 조성하게 된다.

이에 따라 당목(장터), 아양, 관송마을 등 385세대 2,000여명의 주민이 능포로 이주했다. 인근 700여기의 분묘도 공원묘지로 이장됐다.

이후 1981년 9월 900톤의 골리아스 크레인 설치를 완료하고, 같은 해 10월 종합준공식을 갖고 역사적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 세계적 조선업체로 성장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74년 자본금 10억으로 삼성중 설립…공사 과정서 계열 3사 통합 이뤄져

삼성그룹이 조선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것은 1973년 5월이다.

같은 해 7월13일 조선프로젝트팀이 구성돼 조선소 건설 입지를 당시 통영군 광도면 안정리로 잠정 확정하고 일본 IHI와 사업 타당성 검토를 위한 용역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1974년 5월 정부로부터 IHI와 합작회사 설립인가를 받아 석 달 뒤인 8월5일 납입자본금 10억 원으로 삼성중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그러나 1973년 10월, 예기치 못했던 중동전쟁의 발발로 인한 오일쇼크로 조선소 착공을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삼성중공업은 1977년 4월 우진조선을 전격 인수, 조선사업을 재개한다. 우진조선은 정부가 1973년 9월 거제도를 조선공업단지로 지정해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당시 거제군 신현면 장평리 소재 공업단지에 10만톤급 규모의 선박 건조도크를 건설해 연간 10만톤급 선박 4척의 건조를 목표로 1974년 3월15일 설립된 고려조선 주식회사의 후신이었다.

고려조선은 1974년 7월 일본 하코다테도크사 및 마루베니사와 합작을 맺어 회사 체제를 보강하고, 하코다테와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11월30일에는 현대건설(주)과 조선소 건설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해 12월2일 죽도(竹島)조선소 착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불황의 장기화로 건설계획도 계속 차질을 빚게 된다. 이에 우진조선은 새로운 경영권자를 찾게 되고, 1977년 4월 공사 예상소요자금 185억 원 가운데 90억 원이 투입돼 전체 공정의 50% 정도가 진척된 상태에서 삼성그룹이 인수를 한다.

상호를 삼성조선주식회사로 변경한 삼성그룹은 하코다테와 마루베니가 소유하고 있던 주식지분 인수도 추진해 100% 소유권을 확보한 뒤 삼성조선의 독자적인 건설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당초 185억 원 규모로 설정된 기본 계획을 600억 원 규모로 확대하고 조선소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제1기 확장공사는 1979년 말께 마무리돼 연간 최대 건조능력 15만 톤 규모의 설비 설치공사가 완료됐다.

이후 1981년 5월15일 제2도크 건설을 위한 매립 공사를 시작으로 의장공장, 선각공장 증축 및 각종 부대시설 공사가 진행돼 1983년 2월10일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1982년에 삼성의 중공업계열 3사인 삼성중공업, 삼성조선, 대성중공업의 통합이 결의됐고, 1983년 1월1일을 기해 삼성중공업주식회사로 단일체제가 이뤄지게 된다.

당시 통합 형태는 삼성중공업이 삼성조선과 대성중공업을 흡수 합병하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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