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한 학교생활과 성적이며 친구관계까지 많은 말을 하는 아버지에 비해 아들의 대답은 단답형이다. 서운하지만 그래도 아들과 밥상머리를 맞대고 앉으니 좋으면서도 우리가 참 바쁘게 살고 있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요즘은 서양식 식탁에서 집을 나가는 순서대로 밥을 챙겨 먹고 각자 생활패턴이 달라 휴일이 아니면 좀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 밥상머리를 맞대기 쉽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집안의 제일 웃어른이나 아버지에게 먼저 한 상을 차려주는 것이 식사와 교육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집안에 대소사나 꾸짖을 일이 있으면 식사 시간에 이른바 밥상머리교육을 자주 하셨다.
아들과 식사자리 끝에 "넌 학교에서 안 맞고 다니냐?" 라고 했더니 아들의 답변이 기가막히다. "걱정 없어요! 맞으면 바로 신고하면 되지요."
그러면서 일부러 신고한 후 합의금을 탄 친구 이야기까지 했다. 물론 일부 이야기라 무시했지만 왠지 씁쓸하다.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학교에 경찰이 투입된다더니 실제 학교에 경찰이 왔었던 이야기를 했다.
정부가 사흘이 멀다 하고 내놓는 학교폭력대책은 고민이 많아 보이지만 황당하다. CCTV카메라 설치, 학교폭력 관련 특별법 제정, 학교폭력 자진신고 기간, 스쿨폴리스제, 학교폭력 SOS지원단 운영, 검경 학교담당제, 복수담임제 등등이다.
이런 대책 중에서도 나를 실망하게 하는 것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학교폭력 가해자 처벌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초·중학교는 5년, 고등학교는 10년 동안 졸업 후에도 기록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입시나 취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정도 대책이 나올 때까지 우리 교육이 힘들어졌단 말인가? 이런 대책들을 보면 모든 학교폭력의 원인을 학생들에게 두고 있는 듯해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학교폭력이 용납될 수 없는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성인의 범죄행위처럼 엄한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방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와 친구간의 경쟁, 서열화 된 학교체제와 학벌사회가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근본 요인이라 봤다면 이런 황당한 대책이 나왔을까?
학교폭력은 가정환경과 사회적인 요인 그리고 학교교육의 실종 등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물이지 아이들 한 개인의 탓만은 아니질 않는가!
우리 자녀들을 예비범죄자 취급을 하고 의혹의 눈초리로 감시하는 학교에서 건강한 교육이 가능할까? 이것은 선생님의 귀한 노고를 욕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개학이다. 우리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어른들부터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모든 교육의 시작은 밥상머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측면에서 교과부의 밥상머리교육 실천지침은 크게 환영받을 일이다.
오늘 저녁은 싱싱한 고등어를 굽고 한국음식 가운데 가장 우수한 나물요리로 아들과 맛있는 밥상머리를 맞대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