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처럼 제일 먼저 기상예보부터 체크
바다관광 길잡이, 최고령 유람선 선장 탄생 기대

통영 한산도 출신인 서정생 선장이 유람선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부터다. 섬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물질에는 익숙했고, 젊어서는 외항선을 타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 그에게 유람선 선장직은 낯설지 않은 직업이었다고 했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에는 통영에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선장을 한 것은 아니고 4년 정도 기관장을 했지요. 기관장을 하다보니 선장을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과 의욕같은 것이 생겨나더군요. 그때부터 유람선 선장들의 모든 것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익혔습니다."
통영에서 유람선 선장을 하던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키를 놓아야 했다. 뭍에서 쉬고 있을 무렵 장승포유람선에서 선장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그때부터 장승포유람선 선장으로 일한지 16년이 됐다.
그는 유람선 선장이 재미가 없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홀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불가능 합니다. 99명을 만족시켜도 1명이 불만을 토로하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지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7~8년 전만해도 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관광버스가 도착하면 단체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유람선에 술을 박스째 싣는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통제가 불가능 했습니다. 한마디로 무법천지였지요. 단체 관광객 대부분이 술에 취해 배를 탔고 배에서도 부어라 마셔라로 일관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온갖 일들이 생길 수 밖에 없죠. 한번은 만취한 손님에게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욕설을 듣는 일은 거의 일상이었구요. 막무가내로 낚싯대를 가지고 와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관광지에 오면 무조건 먹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팽배해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보고 느끼는 관광으로 많이 변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는 유람선 선장을 바다 관광의 길잡이인 동시에 동반자라고 정의했다. 안전한 운항은 물론 배에 탄 손님들의 분위기를 파악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하며 지루함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재미있는 유람선 관광을 위해서는 날씨는 물론 승선객과 선장의 궁합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바다에서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분위기가 좋으면 더 재미있는 말이 술술 튀어나오는 법이지요. 그럴 때는 다소 야한 농담도 허용이 됩니다. 선장은 일하는데 신이 나서 좋고, 관광객들은 관광에 아쉬움이 없어 즐거움이 배가 되는 법이지요."

서 선장은 파도가 제법 심한 날에 출항을 하면 멀미를 호소하는 승선객이 많아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유람선에 올랐는데 멀미 때문에 제대로 된 관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강 유람선을 타도 멀미를 하는 사람은 멀미를 한다고 합디다. 심한 사람은 멀미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지요. 멀미가 심한 사람들을 배 뒤쪽으로 보내고 먼 산이나 수평선을 바라보라고 어드바이스를 해줍니다. 그래서 좀 나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참고 견디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그래서 안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20년 가까이 유람선을 몰고 있는 베테랑 선장이지만, 바다에 나갈 때는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고 했다.
"기상이 좋지 않을 때는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매일 다니는 익숙한 길이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법인데 바다는 더한 곳이지요. 특히 서이말등대 밑쪽이 제일 위험한 곳입니다. 사리때나 썰물 때가 겹치기라도 하면 유람선을 산모서리로 꺾으면서 오금이 저리는 때가 많습니다. 자칫 순간적인 잘못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섬뜩하지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바다에서 익힌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높은 파도를 헤쳐나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서 선장이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었다고 했다. 파도가 제법 심한 날 자신이 키를 잡은 유람선에 승선한 한 할머니였다고 한다.
"전주에서 온 할머니가 배에 탔는데 그날 파도가 제법 심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파도에 배가 출렁거리자 고함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그 할머니께서 너무 겁이 났었는지 앉은 채로 실례를 하고 말았습니다. 장승포항에 도착하자마자 속옷을 사다 드렸죠. 고맙다면서 집으로 가신 뒤로도 한동안 자주 전화가 왔었지요.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소식이 끊겼습니다. 당시에도 연세가 많으셨는데 혹시라도 돌아가신 건 아닌지 지금도 걱정이 됩니다."
서 선장은 유람선을 탔던 승선객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감사의 표현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람선 선장이라는 직업에 긍지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객들이 하선하며 '구경 잘하고 갑니다'라는 말을 하면 가슴이 뿌듯하지요. 최선을 다해 배를 몰고 설명을 열심히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해금강은 안가냐'라고 되묻는 관광객을 대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게 사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직업병처럼 가장 먼저 기상예보를 체크한다는 서 선장.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최고령 유람선 선장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