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하는 지도자
갈망하는 지도자
  • 거제신문
  • 승인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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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시조시인
대오각성(大悟覺醒)이란 말이 있다. 크게 반성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비는 데는 귀신도 들어준다>고, 속셈이 어떻든 간에 빌고 드는 사람을 박대하지 못하고 은근히 그의 사정을 허용해주곤 한다. 이런 일이 얼마나 진실한지는 늘 의문이 남는다.

옳게 반성하고 그 진정성이 다분히 들어나는 일은 역시 미지근한 우리들의 일상생활이다. 쉽게 생활하는 편의상 묻어 지내는, 어쩌면 이것이 서로간의 화해의 미덕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른 생활과 단단한 일상의 길을 원한다면 철두철미한 반성의 징후와 여기에 따르는 진실이 결코 무뎌져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대의에 접할수록 절실해지는 것이 아닐까?

소위 관행이라고 하여 예사 불법쯤은 오랜 역사로 굳어가고 있다. 일부 정치사회가 온당치 못한 자금으로 비리에 함몰돼가는 것을 국민들은 지금도 개탄하고 있지않는가? 더구나 공직에 봉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단의 작고 크기에 관계없이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도 쉽게 반성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사회의 법질서가 흐려질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발전을 잠식하는 오염독소로 작용할 것은 명백한 일이 아닌가!

지금 사회가 돈의 위력으로 자칫 인성의 건전성을 압박하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만연적인 물신의 피폐에서 회생할 수 있는 활력소는 무엇일까? 올바른 정신에서 생명의 바탕을 기약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돈이 좋다고는 하지만 돈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정신적 가치의 빼어난 과정은 더욱 소중한 것이다.

나라를 위해 큰 칼을 빼어 든 저 충무공의 위국충정에 못 미치더라도 대장부가 따로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주 작은 돈이라도 그 돈의 적고 많음에 매이지 않고 추호도 숨김과 거짓이 없는, 돈의 관리가 공정 적법하게 되어있는 사람이 곧 대장부란 말은 지극히 시대에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설득력에 의미를 두는 것은 좋지만 무구청렴의 극한을 다스린 사람만이 지도자로서의 추상 같은 영도가 가능할 것이다. 국력신장의 총체적 갈구는 물론 난국타개의 정치 정략도 오로지 일생을 통해 청강(淸剛)한 지도자만이 그 성공과 통합(통일)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 양심선언이 있고 고해성사가 있고 그리고 또한 참회의 진심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작금의 젊은 정치인이 있었으며, <고해성사>의 종교적 구원의 입지와 <참회> 역시 인간 최고 역량의 발휘라는 점에서 모두 밝은 사회의 추진력이 되고 있다.

우리들이 옳은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한다면 반성할 줄 알고, 참회할 줄 알며, 양심선언에 조직과 일체의 연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참회의 도량에서 역사의 정직한 방향을 이끌어 주는, 그러한 지도자가 아닐까!

좋은 관행으로 충만하지 못한 조직, 단체, 그리고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대오각성의 철두철미한 거듭나기를 만천하에 솔선수범한다면 이보다 더한 첩경과 미덕은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기다리기도 하지만 거듭나기의 실천과 역사를 가진 지도자를 더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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