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를 열자
문화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를 열자
  • 거제신문
  • 승인 20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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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원 거제박물관장

벌써 4월이다. 산색도 초록으로 바뀌고 벚나무의 꽃들이 활짝 피었다 바람에 진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 된 것이다. 봄은 그 빛깔만으로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개나리, 수선화, 명자화, 매화 등 봄에 만나는 꽃은 아름다움에 더하여 반가움이 있다.

그중에 매화는 설중매라 하여 눈 속에 피는 꽃이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며, 동시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봄의 초입에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우리 선조들은 무척이나 귀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화에 대한 노래는 한시나 시조, 잡가나 타령 등에서 여기저기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나는 올 봄에 매화를 통해 고전(古典)을 다시 한 번 음미할 계기가 있었고, 그 고전을 대하다보니, 과거 우리 선조들의 청정 고아한 정서, 풍류와 해학을 통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여유롭고 깊이 있는 것인지를 느낄 수 있어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되짚어 볼 계기가 되었다.

경제적 측면만을 따진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다. 반만년 역사 이래 오늘처럼 잘 살게 된 때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문화적 측면도 그러한가하고 묻는 다면 아니라는 대답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1번째의 문화대국도 아니고, 거제도가 한국에서 몇 손가락에 들 정도의 문화도시도 아니다.

지난 몇 십년동안 줄기차게 경제성장을 제일의 가치로 여겼고, 그 결과 오늘날 경제대국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의 부분은 그저 구색을 갖추는 정도로 평가된 것 같다. 이렇다 보니 교육 문화 예술 과학 역사마저도 경제의 종속적인 변수로 간주된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거제도는 조선소가 유입된 이후 많은 상황이 바뀌었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소위 노동운동을 통해 권리주장이나 경제적 측면의 성장은 있었지만, 문화적 측면은 기형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노동문화, 어촌문화, 해양문화도 있다고도 하고, 다양한 축제나 문화행사가 있으니 이만하면 좋지 않으냐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국민소득3만 불 시대를 향해가는 우리의 경제적 크기에 비하면 초라해 보인다. 국민소득 1만 불을 갓 넘었을 때보다 더 쾌락적이며, 관능적 유희에 더욱 집착하는 것 같다.

생산적 문화라기보다 소비 지향적 문화로 더 깊이 함몰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행사(문화행사) 저 축제를 둘러봐도 거의가 비슷한 내용이다. 진지한 고민도 없이 이 단체에서 하니 저 단체에서도 해야 하고, 저 지역에서 하니 이 지역에서도 해야 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다양한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고, 행사의 백화점식 나열이 오히려 진부하게 보이며, 상업주의에 물든 그 경박함이 싫다.

행사나 축제의 성패를 참여한 인원이나 수익의 정도로만 보려는 태도도 문제지만, 다양성이나 자생력 그리고 깊이가 부족한 문화의 컨텐츠(Contents)는 더 큰 문제다. 지금 우리는 더 잘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문화적 패턴으로는 힘들다.

문화사업은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다. 그 사업은 당장 돈이 드는 사업이다. 그리고 그 사업의 효과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나타나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주된 흐름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많은 고민들을 동반한다.

 돈(錢)과 경제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문화의 내용이 바뀌어야 하며 이들을 아우르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구태하게도 고전문화의 부흥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으니, 오늘 이렇게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고전을 펼쳐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답은 역사에 이미 나와 있다.

더 잘 살려면 고전을 부흥시키고, 해답을 찾고 싶으면 역사서를 펼치라는 말이다. 재생 혹은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는 중세 이탈리아에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과학과 상업의 발전, 봉건제도의 붕괴와 지동설로의 이행, 신대륙의 발견 등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축적된 에너지가 결국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이것이 근대로 이행하는 통로가 되었듯이, 오늘 우리역시 21세기의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 현재 이 축적된 에너지로 새로운 르네상스시대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

밖에는 벚꽃이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뉴스에서는 FTA반대시위가 대규모로 열린다고 한다.  고생해서 만든 나라이고, 어렵게 기회 잡아 일어선 사회인데, 우리 모두가 잘 되어야 하고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도 화창한 이 봄날, 학동의 ‘봄꽃과 숭어 축제’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가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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