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인공이 반반인 일본원숭이는 흙 묻은 고구마는 껍질을 까먹고 옥수수 알을 일일이 주워먹었다. 어쩌다가 꼬마 녀석 중에 한 놈이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고 강냉이를 손으로 퍼서 바다에 집어던져 뜨는 것을 건져 먹게 된다. 이것을 본 다른 원숭이들이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무리중에서 새끼들이 제일 먼저 따라하고 그 다음에 어미였다. 하지만 숫놈아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줄곧 고구마를 벗겨먹고 옥수수 알갱이를 한 톨씩 주워먹고 있었다. 어찌보면 변화에 느리고 보수꼴통처럼 보이지만 종족보존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숫놈아비로서는 씻어먹는 것조차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구에 다양한 생물들이 존재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번식본능일 것이다. 이러한 번식본능으로 인해 무수한 동식물들은 수 만년 동안 지구에 종족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각종 생물들은 종족번식을 위한 저마다 독특한 능력과 존경할만한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다.
조용필이 애창했던 일편단심 민들레는 홀씨에 깃털까지 붙여서 바람을 타고 멀리 멀리 날려 보내고, 어떤 식물은 동물의 털에 기대어 씨앗을 멀리까지 이동시키고, 또 어떤 식물들은 씨앗이 맛있는 먹이로 둔갑해 새들의 먹이가 된 후 멀리 가서 새의 똥과 함께 일생을 시작하고….
정말 모든 동식물들은 저마다 기가 막힌 방법으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지구에는 이 우주의 어떤 행성에도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식물과 미생물들이 나름의 존재 이유와 함께 변화와 균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스스로의 종족 보존을 위해 이렇게도 애쓰고 있는데 지존의 위치에 있다는 우리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저 '본능대로'라면 종족 보존이 된다는 것인가? 아니 차라리 본능대로 자연의 순리대로 인간이 살아간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것이 수많은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자연에서 너무 멀어져 온 것이다. 깨끗한 환경과 먹거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건강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인간의 종족 보존은 상상할 수 없다. 환경 호르몬의 심각성이 대두되지만 그보다 먼저 먹거리 확보와 안전성은 절대적이다. 먹거리의 확보는 경제가 안정돼야 하고 먹거리의 안전성은 도덕성과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경기 침체와 함께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저성장을 얘기할 때 '늪'이라 하지 '웅덩이'라 하지 않는다. 웅덩이에는 빠져도 금방 올라올 수 있지만 늪에 빠지면 남의 도움 없이는 빠져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저성장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 전문가들은 '저성장의 늪'에 '장기적'이라는 단어를 붙여 얘기한다.
'장기적인 저성장의 늪'! 먹거리의 확보는 갈수록 더 어려워질테고 안전성 또한 다국적 기업의 도덕성과 신뢰성에 비춰볼때 만만찮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까지!
우리나라는 콩과 옥수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그 수입콩과 수입옥수수 8할 이상이 GMO이다. 자칫 우리 국민들이 실험실의 쥐들처럼 GMO식품을 포식함으로써 내장이 쪼그라들고 비틀어져 기형아가 출산되고 2세들의 불임현상이 전이돼 영화에서나 본 낯선 인간의 후손을 보는 것은 시간문제다.
요즘 세상에 못 먹어서 못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지만 우리 대부분은 못 먹고 있다. 우리 먹을거리의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있고 그 안전성 또한 장담 못한다. 설사 휴대폰을 팔아 경제대국이 돼 우리 손에 뿌릴 돈이 남아돈다 하더라도 더 이상 건강한 먹을거리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될지 모른다.
지금 당신이 길을 걷고 있다면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번쩍이며 달리는 외제차를 바라보는 눈길을 무르익은 누런 들녘에서 추수에 여념없는 농부들의 반짝이는 구슬땀에 돌려보자. 당신의 작은 관심이 건강한 후손이 번창하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