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 사업승인신청서 회수로 일단락됐지만 불씨 여전
"80년 세월입니다. 거제시민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싶은 사람, 지친 몸을 쉬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보듬어 온 세월이."
향객들의 기도도량으로 유구한 세월을 꿋꿋이 버텨 온 계룡사(주지 지현스님)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발의 등쌀에 밀려 하나 둘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는 통에 여차하면 절이 다른 어디론가 떠나야 할 판이다. 이번에는 작은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하 1층, 지상 4층의 72세대 연립주택이 추진되고 있단다.
이 지역은 자연녹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의 건폐율과 용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또 고현성, 포로수용소 유적으로 인해 문화재보호구역이 이중으로 교차하기 때문에 건축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미 80년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룡사와는 10m도 안되는 거리를 두고 인접한 지역이다. 사찰이 가지는 절대미덕인 '정적'이 깨어질 판이다. 이에 계룡사측과 신도 등이 격렬하게 반대했고 결국 시행사가 거제시에 제출했던 주택사업승인신청서를 회수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 된 듯하다.

계룡사측, 거제시 특혜의혹 제기
계룡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사업추진 부지는 거제시 고현동 산85-2번지 일대 임야(9995㎡·약 3028평)로 지난 7월 24일 주택사업승인신청서가 거제시에 접수됐다. 계룡사측이 이런 사실을 확인한 시점은 지난 9월께다.
이에 따라 사업저지를 위해 계룡사측 관계자들은 시장 및 관계부서 담당자 면담을 통해 사업승인 재검토를 호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 결국 지난 5일 시행사의 신청서류 회수로 사건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사업 재추진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시행사측이 사업추진을 위해 이미 지난 2003년 해당부지 3000여 평을 매입한데다 지난 해 11월 1500평 추가 매입과 진입로 확보를 위해 시유지 40평을 분할매각으로 매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려로 인해 계룡사측은 지난 10일 오전 11시 사찰 강당에서 '계룡산 난개발 불법특혜 의혹 주택단지 조성의도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계룡사측은 사업자에 대한 거제시의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사업추진의 원천 중단을 촉구했다.
계룡사 측이 제기한 특혜의혹은 10년이상 공공 점유공간(도로)으로 사용되던 시유지를 거제시가 앞장서 특정 건축업자에게 분리 매각한 것과, 건축허가 필수사항인 6m도로 확보를 위해 2011년 시에서 먼저 도로를 정비한 것 등이다.
이와 함께 계룡산의 환경·생태적 공익가치를 무시한 무차별적인 개발사업은 즉각 중단해야 하며, 개발예상 지역은 국도우회도로 교각 안전을 고려해 설치한 받침목이 있는 곳으로 이곳을 깔아뭉갤 시 대형 산사태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계룡사 주지 지현스님은 "해당사업 부지는 계룡사측이 경내 정비와 함께 자연생태를 보전관리해 온 사찰 배후지"라며 "수십년생 소나무와 편백나무로 가득한 이 산의 자생목을 사업주가 임의로 베어내는 간벌을 했고, 도로개설 및 경사도 조정 등에서 허가조건을 맞추기 위해 행정과 치밀하게 공조해 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사업은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자 탈법"이라고 비난했다.

특혜 아닌 행정의 당연한 절차
기자가 직접 계룡사를 찾아 지현스님과 관계자 등을 만났을 때도 이들은 기자회견 당시 주장했던 시의 특혜 의혹을 재차 강조했다. 행정의 조직적인 개입이 없이는 6m 도로확장, 시유지 분할매각, 경사도 조정을 위한 토지분할 등의 절차가 일사분란하게 처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제시 담당자들을 통해 확인한 내용은 계룡사측의 주장과는 달랐다. 민원인의 요구에 대한 행정의 당연한 절차였다는 것이다. 특혜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6m 도로 확장과 시유지 분할매각의 담당부서인 도로과와 회계과 관계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도로과 관계자에 따르면 6m 도로 확장은 이미 지난 2003년에 진행됐다는 것이다. 당시 '신현 계룡사 진입도로 정비공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돼 용지편입 및 보상 등이 이미 완료됐다고 한다.
단지 시유지합필, 시유지지목변경 등 공부상 정리가 2011년에 완료돼 계룡사의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이 부분은 공부 정리를 맡고 있는 회계과 관계자도 같은 답변이었다.
시유지 분할매각에 대해서도 회계과 관계자는 "사업진행을 위해 국공유지 중 일부를 분할매각해달라고 신청하면 지침에 따른 절차를 거쳐 해당 부지를 분할하고 해당 사업자만 입찰에 참여시켜 매각하게 돼 있다"며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
또 이 관계자는 "분할매각한 부지는 다른 용도로 쓸 수 없고 도로로만 쓸 수 있도록 용도도 제한해 매각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 허가업무를 담당하는 주택과는 시행사가 사업승인신청서를 가져갔기 때문에 백지화 상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없던 일이 된 것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