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죽어야
늙으면 죽어야
  • 거제신문
  • 승인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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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1930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빵을 훔친 노인이 절도죄로 재판정에 섰다.

판사가 무엇 때문에 빵을 훔쳤느냐고 묻자 노인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사흘을 굶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파 빵을 훔쳤습니다." 노인은 힘없이 말했다.

잠시 후 판사는 판결에서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이어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이 아닙니다. 빵을 훔쳐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있을 때 그를 도와주지 않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런 까닭에 벌금 10달러는 제가 내겠습니다. 벌금을 함께 내실 분은 동참하십시오."

판사는 모자를 벗어 먼저 10달러를 넣고 나서 방청석에 돌리자 그 자리에서 57달러 50센트가 모금되었고, 이 돈을 노인의 손에 쥐어 줬다.

이 명판결의 장본인은 라과디아(La Guardia) 판사로 그 후 12년 동안 뉴욕시장직을 수행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순직하신 분이다. 시민들은 그에게 '작은 꽃'이라는 애칭을 지어줬고,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정이 딱한 소녀가장이 임대료를 내지 못해 도시개발공사로부터 소송을 당하자 임대료를 대신 내준 서울남부지법 곽용섭 판사, 2012년 올해의 법조인상을 받은 헌법재판소 목영준 재판관이 서울중앙지법에 있을 때 재판 도중 70대 노인의 휴대폰 벨이 울리자 화를 내기는커녕 "할아버지, 그 연세에 멋쟁이시네요"라고 하여 주의를 주면서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일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인간미 넘치는 판사보다 막말하는 판사가 많다. 작년 4월에는 39세의 판사가 69세의 노인에게 "버릇없다"고 해 파문을 일으키더니, 엊그제는 40대 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60대 여성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막말로 대법원장이 나서 사과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재판을 주재하는 판사로서의 자격에 앞서 겸손을 아는 인간자격을 먼저 갖추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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