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캄한 밤에도 환희로운 광경을 마음의 머릿속에 떠올린다. 머릿속 인체의 상층부분을 빌려 생각의 지휘소로 삼는다는 것은 제마다 극히 자연스런 능력이다.
쉽게 생각하는 걷기운동의 매력 역시 자연을 유추해낸 건강증진법의 무한한 가치를 다시금 수긍하게 된다.
걸을 수도 없는 몸의 지경이 있다면 슬픈 일이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 내다보고 되돌아보아야 하는 현시점을 해탈하는 방책 또한 가질만한 소망이 아닌가!
다행히 일상생활의 운신이 제대로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필요한 양만큼의 걷기운동을 건강증진에 사용하는 이를 생각해보자.
걷기운동이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운동을 실천하는 데는 여러모로 의심과 궁금증이 일어날수 있다. 걷기운동이 좋다고 하는 첫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간편한 점을 들 수가 있다.
시간이 꽤 걸리고 이러한 운동조차 몸의 운신으로 불가능한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운동 자체를 거기에 이끌려 집착된 마음을 둔다는 것은 잘못이다.
손발과 관절을 움직이지 못하는 심한 상황을 빼고는 걷기운동은 역시 오늘날 과속시대의 스포즈적 선물이다.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는 몸 상태로 걷기운동을 요청하는 자체가 아직도 의심스럽다면 이러한 의구심은 생활(생명)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늘 우리들이 빠뜨리지 말아야 할 일은 생명의 활력소는 우리 몸 안에서 항상 운동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갓 미약한 전자적 에너지일지라도 몸 안의 먼 발판 대에서 도약의 기폭제로 준비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상 생명의 활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냉철한 두뇌로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작거나 적다고 하는 물질적 존재감에 현혹 돼서는 안 된다.
없기로 말하면 마음은 아주 없어 빈털터리면서도 기폭 자이기도 하다. 없거나 있거나 어느 것이든 필요량을 지나서 무한대의 결과물을 예측해준다.
당장 걷기운동부터 못한다고 해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 늦게라도 된다는 믿음이 있다면 믿고 실천하는 생활과 생명은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걷기운동은 마음운동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마음이 훌륭한 운동이라고 믿음은 마음이 변화와 성장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리 믿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올챙이의 뒷발의 성장은 눈에 안보이나 곧 튀어나올 올챙이의 앞발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것은, 올챙이의 앞발과 뒷발의 성장 변화는 올챙이의 모태가 되는 개구리의 믿음이 우리들의 머릿속 사령탑에서 이제는 뜨겁게 가슴까지 내려와 생명과 생활이 담기고 있다.
건강한 시민이 되기 위한 서민적인 걷기운동은 사려판단과 운동을 한 몸에 불러들여 성장의 빛을 더해준다. 과단한 독립이 자칫 화해의 기회를 놓치기 쉽다.
한편, 지나친 융합 또한 본연의 자태를 잃고 만다. 우리들은 용광로의 대중적인 전환도, 냉각기의 철인적인 변신도, 그 어느 쪽도 국민 대 통합과 화합의 요소에는 부적당하다.
모름지기 대선에서 우리들은 통일의 근원적인 생명을 잃지 않는 화합(和合)의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