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국민의 생명이 내재돼 있는 국가 안보 역시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먹고 사는 문제도 생명체의 유지상태에서만 요구된다.
모든 생각과 사고, 지식과 식별, 그리고 희망과 절망까지도 원래의 생명체가 살아 숨쉼으로써 가능하지 않는가?
생명 이전과 이후의 어떠한 분야도 생명의 현재 위치가 더 중요시되는 것은 생명본능적 상식이다. 지금의 생각과 기본기능이 생명과 맞서게 되려면 안보의 척도가 우선시돼 일의 완급과 선후를 가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많은 이름의, 생명체의 보병들을 운용하고 있다. 경제민생 문제, 화해갈등문제, 교육복지문제 등등…. 그러므로 안보는 단순한 자기방어적 소극적 태도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응징, 순치(馴致)까지도 치달아야 하는 절박한 생명체의 무한한 포용일지 모른다.
여기에는 한치의 의심도 일순의 나태도 허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 민심이 흩어지고 사실과 진실을 왜곡 빙자하는 무책임한 소치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영원히 공멸하게 하지 않을까?
이러한 사실은 국론 분열의 망상까지 가세해 북이 남침해 내려온 역사를 외면하려 한다던가, 천안함의 북한군에 의한 피격으로 산화된 고귀한 생령들의 애절한 사실을 호도하려 든다면, 한 겨레의 화합과 민주화의 길은 아득할 뿐이다.
더구나 생명 존엄의 엄숙한 사실 앞에서 자기 생명의 영역과 손발이 아무렇게나 붙어 내왕해도 좋다고 하는 소위 NLL 영토 모독발언이 있다면 온전한 국토의 수난의 모습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사념과 생각들은 직접적인 사실에 연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토와 국토에 관한 한, 모름지기 반성해야 할 사람이 따로 없으며, 나아가서 온 국민이 대선을 앞두고 모두 책임져야 할 통찰과 진정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통일 한국의 영광과 안보, 그리고 대선 고비의 위대한 업적을, 그 기회를 우리들 국민은 절대로 놓칠 수가 없다. 여기에 선택의 자유와 뒤따르는 책임의, 안보라고 하는 시대적 선명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국가안보에 준한, 나아가서 자존이 곧 세계를 불러들이는 생명생태의 근원적 장치가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수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자기 생명의 고귀한 능력을 저버리고 아첨과 비굴의 나락에 떨어져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면 폭력과도 같은 사태를 과단성 있게 막아내야 함이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문화의 힘이 진정한 국력이 될지언정 도발과 폭력적 근성이 생명본연의 국가안보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존의 도리로 생명과 국토를 지켜 통일을 이룩하고 나아가서 문화와 국익을 우선시하는 글로벌화의 일원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