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수컷이여!
불쌍한 수컷이여!
  • 거제신문
  • 승인 2012.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일광 칼럼위원

소설 연극 노래 드라마 등으로 감동을 줬던 '가시고기'는 부성애의 상징이다. 주로 중부지방의 개울이나 강에 사는 이 민물고기는 4∼7월의 산란기가 되면 암컷이 안전하게 산란할 수 있도록 수컷이 수초를 물어와 자기 몸에서 분비한 점액질과 섞어 둥지를 만들어 준다.

암컷은 여기에 알을 낳고는 떠나버린다. 알이 부화되려면 많은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컷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무 것도 먹지않은 채 쉬지 않고 지느러미를 흔들어댄다.

새끼들이 모두 부화되고 나면 수컷은 기력을 잃고 죽어간다. 새끼들은 자기를 부화시켜준 애비를 뜯어 먹으며 살을 찌운다.

겨울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뚝지'라는 고기가 있다. 뚝지라는 이름보다도 심퉁이 멍텅구리 도치 싱튀 등 많은 별명을 가진 물고기이다.

참 못생긴 탓에 '싱티'고 동작이 굼떠서 '멍텅구리'고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다고 '뚝지' '심퉁이'다. 생긴거나 하는 짓은 멍해도 부성애만은 남달라 '바다의 가시고기'라 부른다.

암컷사마귀는 교미 후에 수컷을 머리부터 먹어 치우는데 이는 뱃속에서 알을 성숙시키려면 충분한 단백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마귀 말고도 거미나 전갈도 교미 후에 잡아먹힌다. 앞으로 태어날 튼튼한 자식을 위해 애비는 살신공양 하는 것이다.

남자는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고도 은퇴하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하루 밥 세끼를 꼬박꼬박 먹는다고 '삼식이 새끼(세끼)'요, 나이가 든 여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로 '돈·건강·딸·친구·강아지'는 있어도  남편은 없다. 심지어 '짐 덩어리' '웬수 덩어리'일 뿐이다.

드디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중등학교 교사로 38년간 일하고 명퇴한 가장이 13년간 아내와 아들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아내를 목 졸라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참으로 불쌍한 이 시대 수컷들의 모습이다. 죽어 제 몸마저 자식이 뜯어먹게 만드는 가시고기나 뚝지와 무엇이 다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