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장
  • 거제신문
  • 승인 2012.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이야 김장하는 게 일 같지 않아 보인다. 마트에 가면 일년 내내 잘 익은 김치를 사 먹을 수 있으니까 많이 담을 필요가 없고, 설령 김치를 담근다 해도 절인 배추를 사와서 양념을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전에는 가정사 일년 행사의 마지막 고비가 김장이었다. 김장이 끝나야 한해 일이 끝났다.

거제도에서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지 않고 선창가에 가서 바닷물로 씻었다. 추운 겨울날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배추를 씻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김치를 담을 때도 설 전에 먹을 것과 설 쇠고 먹을 것을 따로 만들었다. 설 전의 것은 양념을 하지만 설 쇠고 먹을 김치는 양념 없이 소금물만 부어 넣었다.

김치의 어원은 채소를 소금물에 재워두면 팔팔하던 잎에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가라앉는 것을 보고 '침채(沈菜)'라고 했다가 나중에 '딤채'로 변하고, 다시 구개음화를 일으켜 '김치'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지금처럼 고춧가루를 넣은 붉은 김치는 고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임진왜란 이후이며, 그 전에는 동치미나 짠지처럼 맵지 않은 김치가 상에 올랐을 것이다.

우리는 '희생'이라는 말을 가르칠 때 다섯 번 죽는 배추를 말한다. 땅에서 뽑힐 때 한번 죽고, 통배추를 칼로 자를 때 두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세 번 죽고, 고춧가루와 양념에 버무려지면서 네 번 죽고, 마지막으로는 장독에 담겨 유산균에 의해 서서히 배추로서의 성질은 완전히 죽고 만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 내려온 우리의 문화다. 김치 속에 가난했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와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삶의 증좌다. 그러나 요즘 김치를 먹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김치 담을 줄 모르는 젊은 아낙들이 늘어나서 탈이다.

거제에서는 동지 무렵에 김장을 했다. 일찍 했다가는 자칫 따신 날씨 탓에 시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치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온 마을 사람이 김치 담그던 정겨운 풍경은 이제 살아지고 말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