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와 아구
아귀와 아구
  • 거제신문
  • 승인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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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어부들은 '에이, 재수 없어'하면서 배를 가르고 그 속에 든 작은 고기들만 끄집어내고 도로 물에 '텀벙' 던져버린다고 해서 갯가사람들은 '물텀벙'이라 불렀다.

대가리는 엄청 커서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색깔도 시커먼 게 입은 못 먹어 걸신들린 듯이 쩍 벌리고 있다. 못 생긴 걸로 치면 이만한 고기도 드물다. 대가리가 크니까 헤엄치는 것도 엉성하다. 그래도 먹고 사는 재주는 용타.

몸을 바다 밑바닥에 바짝 엎드려 바위처럼 위장하고 대가리에 있는 긴 촉수를 낚싯대처럼 살랑살랑 흔들면 작은 고기들이 그게 먹이인줄 알고 달려들 때 큰 입으로 날름 삼켜버린다.

그런 습성 때문에 아귀를 영어로 '낚시꾼(angler)'이라 하고,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漁譜)》에서도 '낚시하는 고기'라는 뜻의 '조사어(釣絲魚)'라 불렀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업보에 따라 각각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이라는 육도윤회(六道輪廻)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귀(餓鬼)는 지옥은 면했지만 축생이 되지 못할 정도의 악업으로 귀신이 된 불쌍한 영혼이다.

탐욕과 어리석음(愚癡)이 원인이 되어 죽어 극심한 배고픔을 당하는 형벌이다. 못생긴데다가 큰 입 때문에 배고픈 귀신 '아귀'를 물고기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나 경상도 사람들은 '귀'라는 발음이 어려워 그냥 '아구'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버렸던 고기였지만 1960년 대 마산 부둣가에서 '아구찜'으로 새롭게 태어나 지금은 명물이 된 음식이다. 마산 아구찜의 특징은 생아귀가 아닌 말린 건아귀로 찜을 만들기 때문에 쫀득하면서 씹히는 맛이 구수하다.

최근 마산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 '아귀' 대신에 '아구'를 표준어로 삼자는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사전속에 죽어버린 글자보다는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살아있는 말을 쓰자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잃어버린 정겨운 우리말을 되찾자는 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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