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기
마음 비우기
  • 거제신문
  • 승인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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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 회장
미운 아이 먼저 품는다고, 미움이 정서적인 감정에는 미흡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매양 이러한 정서가 인간의 감정에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소한 인간의 감정이 전면적인 정서의 바탕을 지닐 때가 많다.

요즈음 보면 지도자들의 국정 참여를 장식하는 등정 일보도 그 첫걸음을 감정적 정서에 몰입돼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도와 기원과 그리고 맹세의 참배를 드리되 순서와 영역을 달리한다. 다 같은 국가의 주춧돌이 되는 영도자인데도 어느 분의 명소에는 들리고 안 들리고, 그리고 또 우열을 두어 차별화된다면 이러한 모습은 온당하다고 할 수 없다.

디딤돌을 건너뛰어 갈수 있는 강물의 부분 역시 본류의 위편에서 쉼 없는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끝까지 모를 세워서 정체성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정서의 큰 바탕이 되기에는 무엇인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사실들을 예를 들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사건건이 편당과 독선의 논리를 세운다면 외길이 될지는 몰라도 통달의 활로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미워도 떡 한 개 더준다. 미운 아이 먼저 품어야 한다는, 포용의 정서야말로 결코 위신을 추락시키는 아첨이 아니다.

힘과 용기가 들어도 그것은 몇 배나 더 힘 드는 인격의 상위 가치에 속한다. 독선을 전체라고 오해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아집을 고집한다면 남의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거니와 합심 역시 편당의 어리석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소박한 진리일지는 모르지만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대선의 이 시기에 가장 알맞은 우리들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내 속이 남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목숨을 내놓고라도 자기의 굳은 절개와 정체성이 지켜져야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대의를 위해서이다.

흔히 사심을 버리고 욕심이 없어야 하며 오로지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사심과 욕심이 없는 바탕에 큰 비전을 가져보자는 방편이 곧 마음 비우기이다.

빛은 벽의 작은 구멍으로부터 들어온다. 그 빛을 받기 위해서는 공간을 비우는 일이 필수다. 자신의 능력을 비워 새로운 빛으로 채워가는 것이 마음 비우기이다.

마음비우기는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깨달음의 형태와 직결된다. 또한 참과 선함과 가치의 아름다움에서 그 자양분을 얻게 된다.

마음을 비워놓고 사람들은 일순 일각을 살아갈 수는 없다. 마음을 탄탄하게 비울수록 온갖 잡심은 더욱 물밀듯이 틈을 내어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마음을 비워야만 좋은 일을 들여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혜민 스님은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해진다. 반대로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든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음보다 더 큰 것을 신뢰하게 되며 오직 그 한길밖에 없다는 절박감과 안도감에 믿음을 더 확고하게 세워간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혜로운 삶의 한가지 방편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서는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

이번 대선은 화이부동의 현실적인 고삐를 단단히 거머쥐고 오로지 국가안보와 경제민주화를 이룩해낼 정책의 구체적인 틀을 들여놓을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요지부동한 개개인의 가치철학과 입지는 끝끝내 관철하되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제마다 마음자리를 깨끗이 청소해 청정한 빈 자리로 큰 곳간을 만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곳간에 간절한 민생과 안보의 대 통합을 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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