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업씨의 경력과 후보 부적격성
금번 4·25 재·보궐선거에 신안·무안 지역구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김홍업씨는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 때로는 동지로, 민주화와 정권교체에 온몸을 바쳤다. 지역발전을 해내고 민주·평화세력 대통합에 앞장서겠다”며 출마의 변을 토로했다.
과연 그가 민주화와 정권교체에 공헌했는지는 그의 공식적인 경력을 통하여 확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기로 그의 공식경력은 그가 김대중 전대통령(DJ)의 재임기간중인 1998년 2월부터 2002년 4월까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부이사장으로 일한 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이 기간 동안 그 직함에 걸맞게 아·태지역의 평화를 위하여 봉사한 실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이권에 개입하여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1년6월을 복역하였다는 것이다. 법원이 김홍업씨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그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수한 현실적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하여 기업인들의 청탁을 받고 이권을 알선하거나 사건을 처리해주고 그 대가로 거액의 돈을 수수하였다.
2)그는 그 외에도 재벌기업 등으로부터 별다른 이유 없이 대통령의 아들로서 정관계 등에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십억원이나 되는 돈을 증여 받은 후 부정한 방법으로 그에 대한 조세를 포탈하였다.
3)더구나 그가 위와 같이 부당하게 취득한 돈의 상당부분을 유흥비로 탕진하거나 부동산 구입 등 사적인 용도에 사용하였다.
4)또한 그가 검찰, 국세청, 예금보험공사 등 국가 주요기관에 대해 시도한 청탁이 대부분 성공하였다는 사정은,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구조적인 부패와 유착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고, 그러한 사실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국가공권력에 대해서까지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게 하였다.
5)전임 대통령 시절 유사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지난 일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비슷한 내용의 범죄를 되풀이 한 데 대하여는, 앞으로 이러한 범죄의 반복을 더 이상 다시 보게 되는 불행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법의 엄정한 심판이 불가피하다.
21세기에 벌어지는 시대착오적 정치코미디
이러한 경력을 가진 김홍업씨의 보선출마에 대하여 전국적인 논란이 분분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공천절차의 비민주성이다. 민주당은 당초 무소속 출마를 계획하여 공천신청조차 하지 않은 김홍업씨에게 러브콜을 하여 떠맡기다시피 공천장을 갖다 바친 것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평생을 바친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DJ의 적자(嫡子)이며, 평화적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을 한 바 있어, 우리나라 민주정당의 정통성의 맥을 잇고 있다고 자임하는 민주당이 보여주는 위와 같은 비민주성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둘째, 타당후보인 김홍업씨의 당선을 위하여 이 지역에 아예 후보를 내지 않은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적 양태이다. 이러한 고육책이 「재·보선 40전 40패」라는 아픈 추억을 가진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어차피 공천해봤자 질 것이 뻔하니, 굳이 호남의 영원한 맹주 DJ의 눈에 날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정당의 존재근거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이러한 작태를 「범여권의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한 전략적 무공천」이라는 미사여구로 호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부적격의 적격성, 그 역설의 메카니즘
셋째, 「가장 부적격한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가장 적격하다」는 모순과 역설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두 정당이 새천년을 맞이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 민주정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전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선시키고자 하는 후보는 김홍업씨이다.
그의 전력에 비추어 그가 객관적으로 이번 보궐선거의 후보로 절대로 부적격함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바로 이 절대적 부적격성이 ①그가 호남의 맹주 DJ의 아들이라는 사실, ②그의 형이 얼마 전 대법원 확정판결로 국회의원자격을 상실한 DJ의 장남 김홍일 전의원이라는 사실, ③그가 출마한 지역이 「작은 DJ」로 평가받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라는 사실 등과 맞물리면서 졸지에 최적격성으로 변신하는 요술을 부리게 된 것인데, 그 역설의 메카니즘은 다음과 같다.
1)금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은 사분오열되어 있고, 호남민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소위 범여권의 통합은 DJ에 기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2)DJ의 정치적 파워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3)두번에 걸친 대선승리가 가져온 실질적인 호남정권을 이어가려면 DJ의 호남에 대한 영향력을 가장 극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4)그러려면 대선을 앞두고 치려지는 금번 재·보궐선거에서 「객관적으로 절대로 부적격한 후보를 내세워도 DJ가 입김만 불면 당선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국 김홍업씨는 「가장 부적격함에도 불구하고 출마한 것이 아니라 가장 부적격하기 때문에 출마한 것」이라는 웃지 못 할 역설이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우리의 자랑스런 정치지도자 DJ는 김홍업씨의 출마가 전국적인 부정적 여론에 직면하자, ‘홍업이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취직도, 사업도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검찰의 사건 조작으로 억울하게 처벌받은 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명예회복을 하겠다는데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며 그를 두둔했다. 일견 이 땅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공으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전직 대통령의 갸륵한 자식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민을 기망하는 발언임에 분명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홍업씨의 범죄사실은 모두 DJ의 대통령재임기간 중의 범행인 바, 세상에 어떤 검사가 현직대통령의 아들을 사건을 조작하면서까지 구속하려고 하겠으며, 그렇게 마음먹은들 조작이 가능하며,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아 낼 수 있겠는가!
둘째, 현직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취직도, 사업도 어려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다.
셋째,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DJ의 영향력이 덜한 수도권에서 당당하게 출마하게 해야지, 자신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지역에, 그것도 첫째 아들이 독직사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지 얼마 안되어, 이번에는 둘째 아들을 내려 보내 어거지로 금배지를 달아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김홍업씨의 금번 보선 출마는 그를 끔찍이 아끼는 DJ의 비뚤어진 자식사랑과, 금번 대선을 앞두고 DJ의 영향력에 기대고 싶은 범여권 정당들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빚어낸 21세기 초유의 정치적 야합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러한 정치코미디가 다시는 이 땅에, 특히 전번 17대 총선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질 뻔했던 이 지역에 재발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거쳐도 필연적으로 발전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