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한가위 밀물이 마파람을 업고 덮쳐 와 늘 아리던 초가(草家) 왼 편이 기울더니 우리네 생애(生涯)의 행간(行間)마다 기워 놓은 세월이 풀려나와 풀벌레로 달아 나 버렸지요. 그러고도 가을이 옵니다 기억을 씻어 낸 자리마다 돋아나는 봄은 해후(邂逅)의 눈물마저 해맑던 그 봄은 아지랑이로 다 달아 나 버리고 다시 찾은 생가(生家)의 어둠이 그렇게 울고 있었지요. 여기가 그 자리던가요 누이도 없고 할배도 없는 신작로에 누가 날 부르던가요 새풍이 재 너머 지심도에 시나브로 붉어지던 그 꽃이 아직도 남아 섰던가요. 산갈치 한 마리 등줄기로 치닫아 내린 벼랑에 걸린 세월이 그대로 당신의 목숨이 되고 독주(毒酒)로 아려드는 세월의 끈을 놓아 버리자고 말하지요. 산 채로 바람이 될 겁니다 죽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산 채로 불어가는 바람이 될 겁니다. '바람의 귀향(歸鄕)' |
이 詩는 필자가 지세포의 어느 주석(酒席)에서 어울린 후배들과의 만남 끝에 취기(醉氣)로 쓴 것입니다.
거제를 살았던 50대 이상의 나이라면 배경이 뭔지 알만한 그런 글이지요.
1959년으로 기억되는 태풍 사라호가 있었고, 때마침 추석 아침나절 들이닥친 해일(海溢)은 저지대 해안가를 휩쓸어 때 아닌 재난에 울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난과, 그 가난이 빚어 낸 질곡과, 무지와 억척으로 살아가야했던 이 섬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귀밑머리 성성한 얼굴로 찾아오는 고향은 엄청난 변화로 세월의 무상함을 자아내게 하고 있지요.
우리가 늘 고갯마루를 넘고, 학교를 가야 했던 길들은 신작로였습니다. 먼지가 날리고, 자갈이 멋대로 깔려 짚신과 헤진 운동화와 검정 고무신을 괴롭히던 그런 자갈길을 따라 세월을 살아 왔지요.
이제 그 길들은 줄어들었고, 아스팔트가 세월의 기억을 모두 덮어 버렸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누이도, 근엄해서 더욱 고독해 보였던 조부도 가고 없는 길을 따라 원혼처럼 둘러 선 해안가를 더듬다보면, 거기 아직도 매달린 우리들의 유년(幼年)과 세월이 말갛게 마주 보입니다.
멀고, 혹은 가까운 또 다른 삶의 지평을 돌아 찾아 온 고향은 늘 그런 것입니다. 누가 따로 있어 기다리거나 무엇을 찾고 싶어 온 자리가 아니지요. 고향은 늘 무시로 이렇듯 우리를 부르고, 바람처럼 불어 가 만나는 존재지요.
이 詩를 소주 한 잔 건네듯 그대에게 드립니다. 머잖아 또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을 자리로 데려 갈 겁니다.
행여, 고향을 찾았다가 신작로 끝 알 수 없는 움직임처럼 다가오는 행인이 보이거든 그게 친구거니 여기며 이 글을 읽어 보십시오.
이 세모에는 일상적인 칼럼 대신 이 詩 한 수로 인사를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