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표(情表)
사랑의 정표(情表)
  • 거제신문
  • 승인 201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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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고전문학의 배경이 되는 설화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그 정표로 생니를 뽑아준다는 '발치설화(拔齒說話)'가 있다.

한양에 사는 한 젊은이가 경주에 갔다가 그곳 기생에게 반했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한양으로 돌아갈 때 그 기생은 사랑의 정표로 몸의 일부를 자기에게 남겨 달라고 조르자 젊은이는 이를 뽑아 주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젊은이는 헤어진 뒤 자기만 생각해 줄줄 알았던 그 기생이 다른 남자와 잘 지낸다는 소문을 듣고 기생에게 찾아가 뽑아주었던 이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생은 이가 가득 담긴 자루를 던져주며 찾아가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가 고전소설 '배비장전'의 근원설화가 된다. 배비장전에 등장하는 기생 애랑은 배비장의 전임자인 정비장과 헤어질 때 앞니를 하나 뽑아주면 손수건에 고이 싸서 백옥함에 넣어두고 당신이 그리울 때 꺼내보겠다는 말에 감동해 생니를 뽑아준다.

생니 말고도 선비의 생명과 같았던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다는 '단발문신(斷髮文臣)'도 있고,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녀의 꽃신에 술을 따라 마신 한량의 이야기도 있다.

여자의 속치마에 남자는 시를 써서 남기고, 여자는 저고리의 앞섶을 잘라 주거나, 허벅지에 사랑하는 낭군의 이름을 새기는 연비(聯臂)도 문학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정인에게 남자가 주는 정표로 서양에서는 주로 반지였다면 동양에서는 거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랑이 깨어진 것을 두고 '파경(破鏡)'이라한다.

요즘 여성들이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고 있고, 한 잡지사가 만 20세가 되는 새내기 성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을 물었더니 1위가 '애인의 키스'였고, 2위가 '커플링'이라 대답했다.

여검사가 내연의 남자 변호사에게 받은 벤츠승용차가 청탁의 대가가 아닌 '사랑의 정표'라며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세간에서는 '대단한 사랑하셨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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