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정치
흙과 정치
  • 거제신문
  • 승인 201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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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운 칼럼위원
▲ 윤병운 경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거제지부장
농사를 지으며 살다보니 주변에는 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아니 흙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흙은 농부가 흘린 땀만큼의 대가를 오롯이 전해주며 언제나 한결같은 모양새로 그 자리를 지킨다.

한결 같은 모양새라고는 하지만 신경을 덜 써주거나 소홀히 하게 되면 또 다른 얼굴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좋은 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연그대로의 순환 속에서 흙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이 늘 함께해야 한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흙에 정치를 결부시키면 의아할지 모르겠으나 사뭇 흙과 정치는 많이 닮아 있다.

흙은 흙 자체의 존재보다는 작물을 자라게 하고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데에 중요성이 더하듯 정치 또한 사람들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시궁창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흙은 흙을 만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애정과 관심이 사라진 정치는 그 명맥은 이어질 수 있겠지만 종국에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사년 새해 아침, 흙을 사랑하는 이분들께 무슨 인사를 올릴까 고민하다 보니 문득 '아침 드셨습니까'라는 어른들의 인사 말씀이 생각났다. '밤 새 별 일 없으셨습니까'가 일제 강점기의 인사라면 '아침 드셨습니까'는 먹거리가 궁한 시대에 나온 아침 인사말이다.

지난 달 치러진 대선에서 이 가난의 시대를 겪은 분들이 대부분 투표에 참여했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현 정권은 이어지게 되었다.

왜일까? 선거결과를 나름대로 분석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바뀌지 않는 것이어서 뒤늦은 분석은 또 다른 허탈감만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렇지만 서민들의 삶이 철저히 외면당한 이명박 정권의 뒤끝이기에 아이러니한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초식량인 쌀과 한우는 10년 전 가격을 밑돌고 있다. 그동안 부대비용은 몇 배로 올랐는데 10년 전 가격보다 못하다니 우리 농민들은 서민들의 경제를 위해 얼마나 더 희생해야 되는 걸까 궁금하다.

더구나 이런 농민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도시 서민들의 삶조차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IMF 체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방송과 언론에서는 연일 떠들어대는데도 현 정권의 연장을 택한 민심의 진심이 실로 궁금하기만 하다.

흙 속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 속도 보이지 않는다. 여론 조사를 하면 당선 여부를 짐작할 수 있듯 나뭇잎이 시들시들해지면 며칠 전부터 그 뿌리가 썩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유를 갈구하다 자유를 얻었고, 경제를 원하다 경제성장을 이뤘고, 민주화를 갈망하다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OECD에 가입했으며 복지국가로서 현재진행형이 대한민국이다. 가지고자 했던 것들은 국민들의 저력으로 대부분 가졌다.

나무는 흙에서 물을 얻어 씨앗을 틔웠고, 공기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가지에 균형을 잡아 햇빛을 골고루 비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물도 공기도 햇빛도 모두 갖추었는데 잎이 시들시들해진다면 새 흙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하듯 자유도 경제성장도 민주도 복지도 다 가졌다는데 서민들의 삶이 고단해진다면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신호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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