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는 선행학습을 근절하는 교육정책을 펴고 있으나, 일선학교는 버젓이 선행학습을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2013년도 새로 개교하는 상문고등학교를 비롯해 거제지역내 10개 고등학교에 입학예정인 신입생들은 9180명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의 기초 실력진단과 함께 영어, 수학의 수준별 이동수업 등 학급편성 및 정규학습 편성자료로 활용키 위해 진단고사(반편성 고사)를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 사이 치를 예정이다.
말 그대로 학생들의 반편성과 기초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중학교까지 배운 내용을 시험으로 치르게 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진단고사에 포함시켜 시험을 치러 오히려 선행학습을 부추기고 있다. 문제출제 비율도 중학교 과정 50%, 고1 과정이 50% 수준이다.
특히 수학은 중학교 과정보다 고등학교 과정 비율을 더 높게 출제한다. 한마디로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은 과정에 대해 학생들을 상대로 시험을 치는 것이다.
도내 타 지역은 고교과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중학교 전과정으로만 진단고사를 치르는 반면, 거제지역만 유독 정부 교육정책까지 거슬러 가며 선행학습을 강요하고 있다.
이유는 몇 가지로 풀이 된다. 먼저 거제지역 고교들간의 지나친 경쟁의식 때문이다. 타 학교보다 먼저 실력이 뛰어난 중학생들을 받기 위한 것. 그러나 이런 선행학습은 일부 상위권 학생들에게 유리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학습 의욕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는 뛰어난 몇몇 학생들이 소위 스카이대나 상위권 유명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그 성과로 학교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 미리 선행학습을 통해 다른 학교보다 앞서가는 모습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극성도 한몫 하고 있다. 학교측에 따르면 이런 극성 학부모들의 자녀는 대개 상위권 학생들이라고 한다.
정부 선행학습 근절 정책도 모순이 많다. 교과부는 선행학습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키 위해 중점 추진방안 등을 각 교육청에 지시하고 점검반까지 운영하며 근절시키려고 애쓰지만, 정작 공영방송인 EBS에서는 겨울방학 동안 고교신입생들에게 고1 예비과정을 편성해 인기리에 방송중이다.
고등교육계 관계자는 "정부 교육정책에 문제가 많다"며 "수능시험의 경우에도 실제 공부는 학교에서 10월달까지 하면서 시험범위는 전 과정인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입장에서는 수업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고 시험범위를 다 공부하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선행학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더구나 EBS 방송 수준은 상당히 높은데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쉬운 교재로 공부시키고 싶어도 막상 수능에서 EBS 방송 교재가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학생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고교 입학예정자 ㄱ군은 "아직 입학도 안했는데 고등학교 과정 시험부터 친다고 하니 막막하다"며 "나 말고 다른 학생들은 방학중에 학원에 다니면서 먼저 배우는 게 아닌가 싶어 열등감이 든다"고 말했다.
올해 고교 입학예정인 자녀를 둔 학부모 ㄴ씨는 "학교에서조차 선행학습을 강요하는데 어떻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 수 있느냐. 도교육청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단속도 하지 않고 사실상 방관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내며 "밥은 굶어도 애들 학원은 보내야 하는 입장"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거제타임즈 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