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풍경
섣달그믐 풍경
  • 거제신문
  • 승인 20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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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날이 섣달그믐이다. '섣달'이라는 어원은 '설달'이라는 용어의 변화로 보인다.

섣달그믐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목욕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가옥구조 때문에 설과 추석 그렇게 일 년에 두 번밖에 할 수 없는 목욕이지만 몸을 깨끗이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상값은 해를 넘기지 않았고, 저녁에는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작은 설'이라고 해서 가까운 친척집을 찾아 묵은세배를 다녔고, 마당에서는 대나무를 불에 태우면 대나무 마디가 터지면서 폭죽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에 온갖 잡귀들이 놀라 달아난다고 믿었다.

부뚜막이 훼손되어도 쉽게 손을 대지 못했는데 음력 섣달 스무사흗날 부뚜막신인 조왕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1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종알종알 고자질하고 그믐날 돌아오는데 조왕이 자리를 비운 그 사이에 부뚜막을 고쳤다.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민가로 내려와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 때문에 가족들은 신을 모두 방안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대문 위에 체를 걸어 두면 호기심 많은 야광귀가 밤새도록 체의 구멍을 세다가 새벽닭이 울면 그냥 돌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방안 뿐 아니라 광이며 부엌 측간 마구간까지 온 집안에는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조왕신이 옥황상제를 만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가족들은 자지 않고 밤을 샌다. 이를 수세(守歲)라 한다.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어른들이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자지 않겠다고 용을 썼다.

그러다가도 어느 틈에 잠이 들면 아침에 일어나 눈썹부터 먼저 살폈다. 잠든 아이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묻혀 놓으면 아이는 정말 눈썹이 센 줄 알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이런 섣달그믐의 풍경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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