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猪島) 취도(鷲島)의 팔자론
저도(猪島) 취도(鷲島)의 팔자론
  • 거제신문
  • 승인 20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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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험 의장
저도(猪島)는 해방 이후 대통령 별장이라는 특수한 쓰임새로 일반인에게 그 존재가 베일에 가려져 온 섬이다. 누가 봐도 거제 본섬과 가까운 지리환경이고 장목면에 속한 처지지만 진해가 군항이고, 군항에 따른 편이를 들어 그동안 거제의 품에서 벗어나 존재해 왔다.

취도(鷲島)는 표기상 취도(吹島)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사등면 창호리로 구분하고 있는 가조도 북쪽에 위치한 100평 정도의 아주 작은 무인도(無人島)다. 취도(鷲島)는 본시 물닭이라고 부르는 바다오리의 서식지로 알려진 곳인데 그 뜻을 달리 부르는 데에는 고약한 사연이 있다.

러일전쟁 당시인 1904년에 유럽을 거쳐 대한해협을 거슬러 올 러시아 발틱 함대를 대비해 해전을 서두르던 일본 해군이 송진포를 거점으로 소위 함포사격술을 향상시키는 훈련 목표로 정했던 곳이 가조도의 취도였다.

이 훈련을 위해 가조도 옥녀봉에 관측소를 세우고 훈련과정을 내려다보면서 엄청난 포탄을 퍼부었는데 훈련 직전 500평 정도였던 취도는 현재 100평 정도로 줄어 초토화 됐다.

당시 소위로 참전했다가 후일 진해에서 장성으로 주둔했던 두 일본장교가 그곳을 찾아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이 지금 남아 있다.

이렇듯 지명(地名)은 그 유래부터가 팔자타령을 하고 있다는 게 속설이다.

부산의 경우 오륙도(五六島)나 영도(影島)는 조수간만에 따라 달라지는 섬이거나, 고갈산의 그림자가 끊어지는 섬이라는 절영도(絶影)의 의미가 있어 다소 낭만적인 면이 있다.

거제가 구문(舊文)에 대한 해석의 오류로 여러 풀이가 있지만, 신라에 이르러 등장하는 당도(唐島·아마도 이는 당나라군이 주둔한 영향)나 독로국 등의 주장보다는 당시 거(巨)의 뜻이 '크다'라는 의미가 아닌 부사(副詞·어찌씨)로서 '어떻게'나 '어찌'로 해석한 경향을 본다면 '저곳을 어찌 건느랴'는 뜻의 거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정설에 가깝다.

사람의 이름에도 운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명이 드러내는 팔자는 여러 의미를 낳는다.

지리적으로 호전적인 일본과 가까워 숱한 동남해안의 수난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의 질곡에서 본다면 우리 거제를 비롯한 동남해안의 어느 곳이고 비운과 비극의 자취가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 비운과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밝혀내고 올바른 교훈으로 삼는 작업은 또 다른 몫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 상징적인 섬 하나 둘 쯤은 마스코트로 내 세울 필요가 있다.

그 으뜸이 거가대교와 더불어 거제로 접근하는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가덕휴게소를 능가하는 아름답고 수려한 저도를 관문휴게소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동안 국가원수의 별장으로, 해군기지로 운둔시켰던 이곳을 당연히 접수하여 대교와 접속시키면 수십 리를 안내판 하나 없이 삭막하게 도로를 따라드는 방문객들에게 거제 입성의 또 다른 신선함을 가져다 줄 수가 있다.

그 오른 켠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취도가 비운의 역사로 묻혀가는 수난의 상징이라면 저도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 국운을 개척하고 거제의 활로를 여는 관문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저도 반환에 대한 요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홍준표 도지사 취임 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저도 반환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다시금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일들이 별 것 아닌 듯 치부해버리면 그뿐이겠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어떤 인연도 삶의 운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취도와 저도의 모양새를 한 번쯤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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