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작년 이맘때 정지선위반 차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경찰에서 캠페인을 통하여 단속을 강화했던 적이 있었다.
단 몇개월만에 90%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운전자들이 정지선 준수의 모범을 보여 우리 스스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경 교통당국에서 분석한 정지선 준수율이 60%에 못 미칠 정도로 예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발표는 우리의 교통문화 수준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사회적 딜레마(dilemma)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지속적인 참여와 노력없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처음부터 잘못된 습행(習行)이 장기간 묵인되고 고착화되어 있는데도, 일시적인 홍보와 단속으로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안이함이 불러온 씁쓸한 경험이었다.
이를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아쉽지만 정책 당국이나, 운전자, 보행자(시민)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의지와 수준이 ‘반짝’하는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시는 조선경기의 활황에 힘입어 인구 20만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그늘에 가려진 도시화의 각종 역기능도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지역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겠지만, 교통사고야말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된 가장 시급한 현안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이달 들어 거제시에 등록된 자동차는 6만7천여대다. 더구나 주말이나 공휴일에 고속도로를 통하여 몰려드는 외지차량도 급증하고 있다.
시민 3명당 자동차 1대꼴로 한정된 땅덩이에 차가 빼곡하다보니 연일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그만큼 피해를 당하는 시민도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우리지역은 지난 몇 년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오히려 피해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분야가 있다. 바로 오토바이 교통사고다.
현재 우리시에 등록된 50㏄ 이상 오토바이가 9천3백여대이다. 더구나 통계조차 없는 50씨씨 이하 속칭 “딸딸이”까지 합치면 아마 그 숫자는 엄청날 것이다.
오토바이는 도심의 각종 배달은 물론, 심지어 농사일 다닐 때도 이용할 정도로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교통)수단이다.
이렇게 편리한 오토바이의 운전문화 수준은 어떤가. 한마디로 거리의 무법자다. 횡단보도 및 인도 주행, 안전모 미착용, 음주운전, 난폭 및 굉음운전 등이 예사롭게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다.
오히려 헬멧이나 안전슈트를 착용하고 교통신호를 지키면서 오토바이 타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안전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출·퇴근시 양대 조선소를 끼고 있는 도심 주변은 오토바이 불법운행 경연장이다. 그들에게 차선이나 교통신호는 안중에도 없다.
안전모는 커녕 곡예하듯 거리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의 난폭운전은 거리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어려운 경제여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야 좋지만 헬멧도 안쓰고 거리를 냅다 질주하다 부딪치면 온전할 사람이나 물건이 어디 있겠는가.
아까운 목숨이 희생되는 것은 물론이고, 멀쩡하던 젊은이가 온통 전신이 으스러진 채 조사받는 모습이 바로 오토바이 불법운행의 종말인 것이다.
이러니 예전부터 오토바이 가게 주인들은 “오토바이 한대 팔면 1명 사망”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교통사고를 내거나, 피해를 입어도 최소한의 자구책도 없다. 이륜차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반드시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등록된 이륜차 3대 중 1대만 겨우 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뿐이다. 번호판이 없는 “딸딸이”는 아예 보험 가입조차 않는다.
최초 사용신고 때만 보험에 들면 이후에 계속 들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다가 설령, 보험에 미가입해도 과태료만 내면 되니 법은 있으나마나한 셈. 손해율 또한 높아 보험사도 오토바이는 아예 탐탁지 않게 여긴다.
소유자 역시 사고 안나면 별 지장 없으니 보험가입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렇듯 허점이 많은 제도개선은 뒷전인 채 지금껏 경찰의 일상적인 단속에만 의존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무보험이 방치되고 높은 치사율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각계에서 오토바이 운행 문화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경찰도 4월말까지 홍보기간을 거쳐 5월부터는 대대적인 이륜차 단속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노력만으로 이륜차 교통문화를 개선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왕이면 범정부적, 범사회적으로 모두가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운전자의 의식을 개선하고, 법규를 확 뜯어 고쳐 단속을 강화하는 것만이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아까운 희생을 줄이는 첩경이다.
과거 정지선 위반 단속 때처럼 요란을 떨다가 또 허탕만 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교통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지는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 여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