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폭력
문화와 폭력
  • 거제신문
  • 승인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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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힘으로 말하면 제일 큰 힘은 문화일 것이다. 폭력에 유사한 행동이 모두 진정한 힘이 되지 못한다. 폭력성이 개재되는 대화도 있을 수 없거니와 세상의 관계는 진정성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겨레이면서 북한 폭력을 지울 수 없이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남한의 모든 것은 온전하다는 자신감에 턱없이 자위할 수도 없다. 절박하다면 절박한 민족자존의 결의와 통일의 소망이 바쁠수록 논란이 자못 무성해지기도 한다.

지속적인 관계유지와 나아가서 활달한 상생무드는 만에 하나 거짓이 없을 때 성립할 수가 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 우리들에게 역사적 몇 가지 뚜렷한 사실을 시인하려 들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국민이든 겨레든 간에 현실이 엄연한 과오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 소중한 것은 용기 있게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할 줄 알고 다시 큰 삶을 추스르는 일이 아닐까?

단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잘못은 사소한 수준을 넘어 너무 끔직한 것들이다. 남침(1950.6.25)을 자행한 일, 천안함 폭침(2010.3.26), 그리고 연평도 포격(2010.11.23.) 등은 북한이 저질은 일로서 같은 겨레이기에 더욱 묻어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아무런 반성 없이 민족의 평화를 염원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란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민족을 편가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성의 진짜 매서운 심정을 아파도 이겨내야 할 방법이 확실해졌다.

그것은 굶주린 자식을 배만 채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터득하여 뉘우치되 표명하는 북한의 진실이 보여져야 한다.

비록 눈물의 쓰린 모성을 저버리지 못하고 구비구비 단계적인 포유의 정은 있을망정 북한을 더 폭력 되게 방임해서는 안 된다. 대화와 통로를 감추고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결과도 더구나 그것이 온 민족의 통일과 글로벌의 지도적 평화일 때 난감한 요원성과 결핍성을 동시에 예감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화 해서 주변을 위협한다거나 유사시에 동족애의 보위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지극히 치졸한 망상이다. 한마디로 폭력적인 위협과 북한의 자만을 좌시한다는 것은 죄악을 자초하는 모양새다.

군비경쟁을 한다든가 핵무기의 보유 실력은 이러한 일에 동떨어져서는 더욱 곤란한 지경이 되어 국제적 형평을 잃고 만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가능한 한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하고 그 이상의 국력을 필요로 한다.

세계 핵 보유국의 기득권과 세계원자력협정에 의한 현실적 핵 관념은 그 자제와 제한적 요소만큼 대등하고 더욱 나은 힘의 창조를 우리들은 믿고 있다. 그 힘이 바로 문화다.

지금에 와서 필요해진 급박한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수천 년 수만 년 전부터 문화의 진화 역정이 능히 폭력을 순화시켜온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주먹을 휘두르는 가족형제를 어찌 방치하며, 저지하는 방도가 급 처방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북한의 도발과 폭력이 스스로 자제되고 반성의 확약이 없는 한 소통의 신중성이 고려된다는 뜻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이 불과 2년 여 전인 2010년 11월23일 일어났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과 폭력이 스스로 자제되는 토대 위에 겨레와 민족의 글로벌화 정신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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