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는 지난 8일 현재 84개국 9020명의 외국인이 등록, 생활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소와 관계된 외국인 선주 등 미등록된 외국인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이는 거제시 전체 인구의 4%에 달하는 것으로 이미 거제시도 다국적 국제도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제시의 행정은 이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을 갖추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거제시청 민원지적과에서는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했다. 외국인 A씨는 시청 민원지적과를 홀로 방문했다.
통역이 없는 상황에서 A씨는 영어로 민원사항을 말했지만 담당공무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저마다 A씨를 상대하기 꺼려했다.
당황한 A씨와 고개 숙인 공무원들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영어에 능숙한 국내 민원인의 도움으로 A씨는 무사히 민원을 마치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이렇게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거제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청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민원부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자 공무원들의 외국인기피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거제시 민원지적과는 지난 13일 영어로 된 '민원 매뉴얼 및 신청서'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에 대해 A씨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펼친 뒤늦은 행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민 한모(29·상문동) 씨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정의 전형"이라며 "처음부터 매뉴얼이 구비돼 있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매뉴얼의 발간은 그 일과 관계없이 처음부터 외국인 1만여 명 시대를 맞아 만들 계획이었다"면서 "매뉴얼의 발간 전에 그런 일이 있어 유감"이라고 말했다.
거제시청 외의 관공서 등은 어떨까? 사등면과 포로수용소에 있는 관광안내소의 경우 유창한 일어로 얘기할 수 있는 직원이 각각 1명씩 있어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할 때는 크게 무리가 없는 반면 영어가 유창한 직원은 한 명도 없어 다소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가이드책자 등 매뉴얼을 구비하고 있는데다 대부분이 통역가이드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고 한다.
소방서와 경찰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고접수는 창원종합상황실에서 하고 거제서는 출동업무를 맡고 있어 신고접수 과정에서는 문제는 없었다.
만약 현장에 외국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원이나 요원들 대부분이 매뉴얼에 따른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 지금까지 외국어불능으로 구조활동이나 사건 수습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는 것이 소방서와 경찰서의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다문화가족 등을 활용해 일자리 창출과 보다 나은 서비스의 제공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제기되고 있다.
고현동에 사는 박모(52) 씨는 "각 관공서에 외국인 전담인력으로 다문화가족을 고용한다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다문화가족의 일자리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외국인이 찾아오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다문화가족을 상근 인력으로 고용하는 것은 예산 등 여러 문제로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다만 외국어가 능숙한 공무원을 민원담당에 고정으로 배치하는 것은 고려해볼만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