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정상에 신라시대 절터가 있다. 이 절터를 의상대(義湘臺)라 부른다. 절터 주변은 자연석 돌담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축대를 쌓아 방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곳을 의상대라 한다.
의상대는 신라시대 고승 의상대사가 기도했던 곳이다. 절터를 오르는 길은 계룡사 뒤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과 거제면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계룡산 정상 555m의 바위틈에 겨우 은신할 수 있는 곳에 작은 돌로 계단을 쌓고 그곳에 절을 지어 기도를 했던 곳이다. 약 30평정도 된다.
의상대 주위는 단풍나무가 붉게 불타고, 절터 위쪽에는 장기판을 엎어 놓은 듯 한 장기판 바위가 있고 그 옆에는 불의문 바위가 있다.
병풍같이 둘러 서있는 바위는 코끼리상을 비롯한 갖가지 동물상들이 조각을 해 놓은 듯하고, 오른쪽 암벽은 천길 낭떠러지로 아찔하다.
여기서 보면 멀리 비진도 한산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석양에 가물거리고, 높고 낮은 산들이 하늘 끝에서 겹겹이 파도처럼 안겨온다.
북쪽에만 암벽이 막아서 있고, 모두가 툭 느여 있어 여기에 오르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듯 상쾌하다. 발아래는 꼬불꼬불한 능선이 용트림하듯 꿈틀거린다. 의상대는 용의 머리부분으로 용의 눈과 눈 사이가 되고 꼬리는 아홉개로 구천계곡에서 그 뿌리를 박고 하늘로 승천하는 형상이다. 좌우를 둘러보면 잘 짜여진 산세가 천하의 명당지 같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의상대사가 이 명당터에서 가부좌하고 정진했던 곳에는 아직도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벼랑을 오르는 길가에서 토기편린이 발견된다. 빛 바랜 토기편에서 천년의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직감하니 인생의 무상함이 뜨고 지는 해와 같이 짧고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바람소리 고요한 절터에는 청아한 독경소리가 바윗돌을 울린다. 석양이 비친 의상대는 대사의 초연한 모습이 환상으로 나타난다.
1960년경 이 절터 계단아래서 윤송학(고현) 씨가 길이 15m 남짓한 불상을 발견, 사등 성내 김모 씨가 가져갔는데 이 불상을 소지하고부터 집안에 액운이 생겨 없애버렸다고 한다.
고현쪽 70여m 아래 약수물이 있다. 주위는 산죽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집터의 흔적이 보인다. 이 집터도 의상대 절과 관련있는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진달래가 피는 봄이면 등산객이 의상대를 찾아 오른다. 이곳은 야영장으로 적당하다. 절터의 층층계단과 돌담, 그리고 병풍처럼 둘려져 있는 바위가 마치 방안처럼 아늑하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계룡산 정상에서 기도정진을 한 것은 계룡산이 천하 명산이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계룡산이 두 곳 있다. 충청도 계룡산과 거제 계룡산이다. 정감록 비결에 한양 말년에 계룡산아래 백만의 목숨을 구제한다는 전설에 따라, 정감록을 믿었던 사람들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두 충청도 계룡산 아래로 피신을 갔다.
하지만 충청도 계룡산은 적의 피해를 입었지만 거제 계룡산 아래는 10만의 주민과 20만의 피난민, 17만의 포로가 목숨을 구제받았다. 적이건 아군이건 목숨을 구제 받은 명산 거제 계룡산이 이때부터 진짜 계룡산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