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곶이의 봄맞이
공곶이의 봄맞이
  • 거제신문
  • 승인 201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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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봉 칼럼위원
입춘(立春)과 우수(雨水)·경칩(驚蟄)의 세 절기를 지나 낮과 밤의 시간이 같아지는 춘분(春分)을 맞는다. 바야흐로 봄, 봄이다.

언제 심술을 부릴지 모를 꽃샘추위를 조심하며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고 기지개를 켜 공곶이로 봄나들이를 나선다.

예구마을의 끝자리, 공곶이를 찾는 나들이객들을 위해 잘 닦여진 길을 두고 옛길을 찾아 올라가니 가장 먼저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가 반긴다.

사뿐 지나는 바람에 향기가 그윽하다. 이 향기 끝에 묻어있는 겨울 그림자는 겨드랑이 밑으로 오소소이 시린 몸 떨림을 찔러 넣고 간다. 시린 숲 그늘 오솔길을 한 땀 한 땀 딛고 오르는 사이 흙길이 끝나 잘 닦은 산책로에 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고개 위에 올라서니 봄볕 속에 앉은 섬 하나가 반긴다. 내도이다. 어깨 자락에 햇살을 풀어 금빛 사금파리로 날갯짓 하는 한 마리 새 같다. 공곶이 고개에서 누리는 눈 시원함이다.

공곶이 동백 숲 터널, 눈길 아래로 아득하게 긴 동백의 푸른 숲 터널에 들어선다.

떨어진 붉은 꽃잎이 자락으로 펼쳐져 발끝에 닿아 아리고 쓰린 마음이 내딛는 발걸음을 주저케 한다. 차마 더 딛고 내려 갈 수 없어 옆 틈새로 다랑이 밭에 나오니 밭둑 밑 양지에서 노란 수선화 수줍은 얼굴로 살포시 웃음짓고 있다.

수선화 나르키수스(Narcissus).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존과 자만심'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꽃말을 가진 꽃.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은 그 자리에 핀 꽃이라는 전설을 가진 꽃이다.

바닷가 이곳의 주인장 노부부는 어떤 사연 있어 이 꽃을 심었을까 싶다. 척박한 산비탈을 계단식 밭으로 일궈 수천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다. 호미와 삽, 곡괭이와 땀방울 만으로 4만평이 넘는 지상낙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수선화 밭을 지나 산자락에 닿으니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고결과 정조'를 꽃말로 지니고 휘파람새를 곁에 두는 꽃이라니 화사함 속에도 기품이 있다.

밭둑을 돌아 나와 동백 숲 터널의 끝자락에 내려서 하늘을 본다. 푸른 잎 끝에 맺혀 붉디붉은 치마 자락을 헤쳐 노란 속살 내밀며 사랑을 기다리는 붉은 꽃, '기다림과 애타는 사랑'을 꽃말로 가진 동백꽃이 온 시선을 빼앗는다. 하늘에 맺혀 핀 꽃과 땅위에 떨어진 꽃잎 사이 오솔길을 조심스레 따라 걸으니 천리향과 수선화의 뿌리를 파는 무인 가판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 앞에 펼쳐 있는 텃밭 화원에는 봄 햇살이 한 가득이다. 바다를 지나오는 바람이 어느새 부드러워지고 갯가에 부딪는 파도 소리 맑고 시원하다.

텃밭과 바다를 끼고 돌아오는 길목에 또 다른 봄꽃이 숨은 듯이 피어있는 것을 본다. '성실과 겸손', '진실되고 순진무구한 사랑'을 꽃말로 지닌 바이올렛, 제비꽃이다.

그 옆에는 제비꽃의 저 사랑을 훔쳐보기가 괴로운 듯한 '덧없는 사랑'의 바람꽃이 오로지 혼자 피어 있다.

휘돌아 오르는 오솔길에선 또 다른 꽃향기가 스민다. 작은 꽃송이가 한 무더기 꽃으로 피어 천리까지 향기를 피운다는 천리향꽃이다. '꿈속, 달콤한 사랑'이란 꽃말처럼 향기에 취한다.

봄은 이렇게 우리 곁에 와 있다. 싹이 돋고 꽃이 피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한다. 고마운 생명의 순환이다. 되돌아 올라온 고갯마루에서 가슴을 활짝 열고 봄맞이의 심호흡을 크게 한다. 그리고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따뜻한 볕과 남풍을 주시는 분께, 이 꽃과 나무들을 가꾸어 봄맞이를 선물해주시는 분께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남도 1번지 거제도 공곶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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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2013-03-20 21:21:43
글속에서 남도의 봄 맛을 봅니다^^
지금도 이 꽃들이 남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