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를 부추기는 혼례문화
과소비를 부추기는 혼례문화
  • 거제신문
  • 승인 201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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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석(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연중 절기가 좋은 철이면 혼례로 주말이 복잡해진다.

인륜이 지닌 대사 가운데 혼례와 상례는 어쩔 수 없는 명제이고, 분수에 알맞은 혼례와 상례의 문화가 그 사회적 공동체감을 결속하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는 누구도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부산의 한 구청사에 마련된 혼례식장을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혼주는 그다지 생계에 쪼들릴만한 처지도 아니었지만 예식장의 무료사용에 혼수지원금까지 받는다는 귀띔을 해줬다.

이런 행정복지가 시역 대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니 타 지역에서 온 하객들은 부러움과 찬사를 보냈고, 며칠 후 혼주가 될 처지로서 필자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지방도 아닌 서울의 혼례를 감당하게 된 상황이 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객들의 식대라는 것이 한 끼에 십 수 만원을 호가하는 예식장을 전전하다가 강북지역의 어느 작은 호텔에서 그나마 분수에 가까운 조촐한 예식장을 찾았지만 그도 만만치 않았다.

혼례비용이 식사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요즘 서울에서 혼례 경험을 한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은 엄청난 식사비용에 있다고들 한다. 몇 군데 가 본 부산의 처지와는 대조적인 과소비의 사례였다.

굳이 이런 얘기에 서울을 가기 위한 교통수단  등을 포함해 다 열거하면  복잡해지지만 한 나라의 수도라는 서울의 비뚤어진 과소비 작태에 울화가 치미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는 그러면 서울 혼례를 피하면 될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 또한 현명한 대답이 될 일이 아니다.

지금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서민혼례문화의 건전성을 위해 행정당국이 수범을 보이는 선례들을 본받아서라도 분수를 넘어 선 혼례 장례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결코 어려운 과제도 아니다. 공공시설을 이용한 주말이나 연휴, 일과 후의 시설 활용은 평소 멀게만 느껴지는 관청이나 공공시설에 대한 소외감을 덜어주고 진정한 공익시설의 친밀감을 더하게 한다.

혼례에 동원되는 식대 등은 주변의 형편에 따라 해결하면 될 일이다.

만약 예식시설을 운영하는 당사자들의 이견이 있다면 이 기회에 보다 폭 넓은 사회적 건전성을 위해 상식과 분수에 알맞은 예식문화에 앞장 서 달라는 주문을 드리고 싶다.

특히 범국가적 보편적 복지가 대두되는 요즘에 와서 빈부의 갈등을 부추기고 예식의 고급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횡행하는 기형적 현상은 시정되어야한다.

아마도 한동안 지나친 예식 절차상의 대여비나 까다로운 경비 시비를 피하기 위해 음식 값에서 실리를 취하려는 그런 발상이 시작 된지는 모르지만 생애에 한두 번, 축복으로 치러야 할 그런 잔치가 과소비의 온상으로 얼룩져서는 안 될 일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인근 도시들이 부산시의 사례를 본받아 이런 건전한 혼례 예식문화를 하나씩 실천한다는 소식이다.

부산의 경우 아예 모든 구청이 팔을 걷어붙였고 주변의 식당들까지 무리한 식사비 청구를 자제하는 캠페인을 한다고 하니 귀 기울여 들을 대목이다.

간혹 외국 여행길에서 보면 꽤 선진국이라고 복지문화가 정착된 곳에서도 예식풍습은 매우 조촐하고 검소하게 치러지는 경우를 접하게 되고, 전통을 고수하는 중국의 오지에서도 마을회관에 누구나 무료로 대여 받을 만한 혼례복과 장식이 준비된 경우를 볼 수 있었다.

매사에 다소 극성스럽고 허식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더라도 이젠 성숙한 시민의식에 걸맞게 가장 필수적인 이런 예식문화부터 그릇된 관행을 시정해 나가야한다.

지나친 비교의식, 우월주의, 선점문화가 빚어내는 허례허식과 상업적 예식시설의 운영이 고쳐지지 않으면 허장성세의 부조리한 성장으로 기형적 사회현상이 만연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옛날 안방 마루 끝에 병풍을 두르고 정성 들여 만든 혼례상을 차린 후 누구나 돌려 입을만한 예복으로 예를 드린 후, 바로 그 자리에 음식을 차리고 이웃 친지들이 축복을 나누었던 우리의 전통혼례가 주는 인정과 유대의 가치가 그리워진다.

만약 그런 절차나 전통적 차림새가 성가시거나 거추장스럽다고 해도 몇 사람이 앉으면 서민들의 한 달 생활비를 허비해버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혼례식탁을 만들어 가면서 얇은 부조봉투를 들고 달려가야 하는 모순은 이제 제발 함께 털어버리는 의지를 가져야 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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