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선거과정에서 여야가 줄곧 해 왔던 정치공약이고 그보다는 오래전부터 시중의 여론이 제발 동네 선거에 정당공천 잡음이라도 없었으면 했던 게 이제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아직 이 문제는 야당의 치고 빠지기 식 이중성이 드러나는 일이라 속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다.
야당 일부의 논리를 들어보면 화두에 늘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지방자치가 곧 풀뿌리민주주의니 기초자치단체와 의회에 정당이 관여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정당정치에 있어 정당구도의 바탕이 되는 일반 유권자의 당원 구성환경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의 처지에서 매사에 민주주의를 앞 세워 원숭이 흉내식의 민주제도를 모방하는 일도 그리 환영할 일이 아니다.
이참에 교육계의 화근이 되는 교육감 직선제 선거를 비롯해 지방정치의 불온한 선거제도와 모순들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여권 내에서도 어떤 이는 야당이 후보를 내는데 왜 여당 후보 없는 선거를 만들 것이냐고 볼멘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정계 개편 직전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야권의 무책임한 작태를 함께 가자는 식으로 둘러 대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지방자치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바탕이라고 하지만 지역발전의 봉사자가 되어야 할 지방정치 지망생들이 이 제도의 시작부터 유권자를 섬기고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공천의 배경을 팔고, 민심과 괴리된 당론을 운운하거나, 정당 행사가 우선이며, 지역구 의원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린 어처구니없는 풍토를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거기다가 아예 일반 서민이나 유권자는 확인할 길 없는 얼마짜리 의원이니, 시장 군수니 하는 낯 뜨거운 소문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그런 지역 정치가 불순한 정치자금 조달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어떤 자치단체는 등장하는 시장군수마다 그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차례로 법망에 걸려드는 바람에 해당 지역민의 자존심을 먹칠하고 걸핏하면 보궐선거를 치르느라고 아까운 혈세를 선거로 허비하는 일이 다반사가 아니었던가.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승자독식의 선점을 위해서 정치쇄신의 구실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면 지금이라도 정당은 그 경위를 고백하고 지방선거 공천문제를 비롯한 교육계의 선거 여부, 보궐선거의 원인제공자비용부담 등에 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지방정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정당공천을 중앙이 아닌 당원들에게 돌려주겠다던 약속부터 어기고 있는 실정이니 정치쇄신의 공염불이 걱정이다.
자칫 이러한 여야의 관행적 공천 집착은 지금 민심에 의한 정계개편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키울 것이다.
특히 지난 18대 국회에서 보궐선거의 원인제공자에게 선거비용을 부담시킨다는 취지로 발의된 입법의지가 어느새 사라져버리더니 지방선거를 필두로 모든 선거에 쇄신정책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정치인들이 활개를 치는데도 이 부조리가 시정되지 않는 현실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면 단체장들이 바뀌어 예산편성과 정책이 거꾸로 가는 바람에 엉뚱한 피해를 당하거나 새로운 권력에 휘둘리는 공직자들이 늘어나고, 중도하차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묵묵부답인 민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져버렸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다중을 상대로 개인의 영달을 앞 세워 함부로 입지와 지조를 바꾸는 이런 파렴치한 정치인들을 제한해야 한다. 적어도 정치쇄신이라 함은 새로운 권력의 초기에 이루어져야하고, 입법권을 가진 사람들의 자가당착에 의한 답습의 고리가 끊어지지 못한다는 게 원인이란 걸 안다면 이 기회에 지방선거의 정당공천배제부터 하나씩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한때 막걸리와 고무신에서부터 매수와 향응으로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선거정치가 웬만큼 정화되고 성숙된 환경으로 가고 있노라고 시름을 덜었는데, 이젠 거꾸로 정당을 좌우하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공천 잡음을 끌고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방정치의 정당공천 배제는 이러한 우려에서라도 한시 바삐 해결되어야 할 정치쇄신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