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아!
니가 친구들과 싸우고 코피 터진 얼굴로 울며 집에 왔을 때, 너는 싸웠다는 이유로 또 다시 나에게 회초리를 맞아야 했지. 생각 같으면 너를 때린 놈을 찾아 니가 맞은 만큼 두들겨 패고 싶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만 살 수 있느냐, 아이들이란 싸우면서 커는 거라고 자위하며 분을 삭이어야 했지.
그런데 말이야. 참 용감하고 대단한 아버지도 있더구나.
자식이 얻어맞고 왔다고, 아비라는 사람이, 경호원들을 떼거지로 거느리고 가서, 아들과 시비가 붙었던 종업원들을 한밤중에 청담동 인근 공사장으로 끌고 가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두들겨 팼다더구나. 더 재미난 것은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니 놈도 맞아 봐라 하며 눈을 계속 때려 이 종업원의 눈이 만신창이가 됐다니 이건 코미디치고는 아주 수준 높은 코미디다 그자.
아들아!
나는 니가 얻어맞고 왔을 때 너를 앞세워 너를 때린 놈을 찾아가 니가 맞은 만큼 패줘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아마 나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모자라나 보다. 별 두개 달린 모자를 쓰고, 가죽장갑을 끼고 150cm짜리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용감한 아버지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난 애비라서 미안하구나.
옛말에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히려 때린 놈은 당당하고, 맞은 놈은 겁이 나서 숨어 지내고,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는 이 귀신 곡할 숨바꼭질을 보며 나는 그런 힘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서 더 미안하다.
아들아!
아버지가 부총리쯤 되니까 외국어고등학교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자기 딸은 외고를 졸업시켜 대학은 비 동일계로 보냈고, 아버지가 큰 회사 회장쯤 되니까 많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 증여를 불사하고, 아버지가 공영방송 사장쯤 되니까 자식을 군대 보내지 않으려고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도 했더구나.
그런데 엊그제 말이야. 자기 아들에게 꾸지람을 했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인 여교사를 폭행한 일도 있었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알고 있지? 사회적으로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면 그만큼 그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가 높아진다는 거야. 1·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고위층 자녀가 다니는 이튼스쿨 출신자가, 노동자 가정의 자녀 희생자보다 배나 많았다니 그게 바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겠는가.
아들아!
나는 니가 맞고 와도 너를 때린 사람을 찾아 니가 맞은 만큼 때려줄 힘도 없고,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할 능력도 없단다. 니가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꾸지람 들었다고 학교에 찾아가 항의할 그런 두꺼운 얼굴도 가지지 못해 더 미안하구나. 그리고 누구처럼 교묘하게 재주를 부려가며 재산을 상속해줄 거리도 없어 속상하도록 미안하다.
이 아비는 지금까지 ‘자식 자랑 반병신’이라는 팔불출정신 탓인지 마음과는 다르게 겉으로 좋다는 표를 내지 않고 살아 왔단다. 그러나 기실 그건 능력 없는 아비의 핑계라는 걸 너는 벌써 눈치 챘을 거야 아마.
아들아! 너 이런 유머 알고 있니?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단다. 부잣집 애들은 부모덕에 팽팽 놀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게 부러웠기 때문이지. 그래서 아버지에게 따졌지.
『아버지는 왜 재벌이 아니에요? 아버지가 재벌이었음 내가 재벌 2세가 돼서 편하게 잘 먹고 잘 살았을 거 아녜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눈을 흘기며 하시는 말씀
“이놈아, 그러는 너는 왜 박지성으로 안 태어났냐!?”하더라나
아들아 미안하다. 우리는 그냥 있는 대로 살자꾸나.
선생님이 돈이 없고, 싸움을 잘 하지 못해 참고 있어야 했으면서..
남들이 보면 선생님이 아주 착해서 참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이 있을 듯 합니다.<작은 농담입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