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착각의 사이에서
현실과 착각의 사이에서
  • 거제신문
  • 승인 200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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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혜 계룡수필문학회원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보름 병원에 누워 지냈다. 사고가 났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건 아니지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그렇게 될까 하고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었다. 사고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후 일의 처리로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쳤다. 보험회사의 안일한 일처리도 참을 수 없었고, 하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조급한 마음으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고도 보험료를 냈으니, 그곳에서 처리하면 된다는 의식도 속이 상했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자리를 잡았는지 모른다.

사고 한 번 내지 않아 몰랐던 것을 이번에 많이 알았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여 실수한 자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옳겠는데, 무조건 사고가 났다 하면 피해자도 일정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제도라면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안일하게 나누어 먹기 식의 보험책정도 문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명히 하여 억울하게 몸과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억울하게 선의의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돈보다도 위치와 명예보다도 심성은 살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직까지 나는 그 고뇌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오르는 혈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일이 벌써 두어 달이 다 되어간다. 이런 일로 항의한다면, 착각에 쌓인 덜 떨어진 우매한 사람의 모습이라 할지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착각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안함의 표시가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병상생활은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충격과 분노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도 힘들었다. 링거를 달고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없었던 혈압이 열을 동반하여 오르락내리락 줄다리기를 해댔다, 간호사가 체크를 한다.

입원을 하기 전,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며 작아져 갔다.

병실 생활을 받아들여야 마음과 몸이 빨리 회복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병실에서 하는 일은 온종일 누워 지내는 일이다. 2인용 병실은 공간이 좁다.

마주치는 얼굴도 적다. 여러 사람들 속에 어우러져 지내봄도 나쁘지 않지 싶다. 다행이 외지에서 온 노부부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그들이 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시각을 맞춘다.

그들을 따라 재방송까지 보면서 삶의 현장을 오고간다. 여주인공은 믿었던 남편에게 애인이 있었고,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절친한 친구라는 데에 절망한다. 믿었던 세상에 절망하고 불신의 늪에 빠지는 자신에 허덕이던 나는 서서히 그들 속으로 빠져든다.

왜 세상은 이리도 이상한 쪽으로만 치닫는 것일까. 주인공의 분노가 목을 조여 숨쉬기조차 힘들어 할 때 그 고통이 내게로 전이되어 옴을 느낀다.

아내가 남편의 가슴을 치며 통곡할 때, 난 두 주먹에 힘을 주고 더 힘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왜 세상은 이런 거야. 왜 이런 거야. 아내는 남편과 자식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고, 상대도 불만이 없을 거라고 믿었던 드라마의 여주인공.

그것이 나만의 착각으로 다가왔을 때의 어리석음과 배신, 모멸 등으로 자신을 학대하며 숨쉬기조차 힘들어했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여주인공의 주장은 한결같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상대에겐 착각일 수밖에는 없을지 모른다.

착각은 실제와는 다른데 실제처럼 느끼기에.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바라본 세상이 지금은 혼란스러워도 결코 올바르게 살고 있는 자의 것이라 믿어 본다.

그것이 착각이 아닌 현실이길 바라며, 나 또한 우리의 사회가 병들었다 해도 사람의 심성에는 기본이라는 것이 숨쉬길 기대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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