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이 생동하고 개화해서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하고 새로운 일이 태동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5월은 변화의 시기이고, 역사를 이어가는 준령의 힘에 박차를 가해서 더 더워지거나 비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비설거지를 해 놓아야하는 시기다.
우리 현대사에서 5월에 일어났던 몇가지 사건들, 군사정변과 광주사태를 중심으로 하는 몇가지 일들이 과거로 묻혀지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기는 분들은 아직도 그 역사적 해석이나 진실 규명에 대해 말끔하지 못한 미련을 갖고 있다.
가령 5·16이 군사혁명이냐 쿠데타냐는 논쟁이 있고, 광주사건이 민란이냐 민주화운동이냐는 해석으로 딱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바람에 아직 그 여파의 정치적 입지나 환경을 떨쳐내지 못하는 흐린 날씨가 5월을 가리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북한 특수공작원들에 의한 광주사태 개입의 증언들이 흘러나오고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DNA를 가진 60여구의 사체들에 대한 해명과, 당시 북한정권의 연관성 발언들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만약 이 지역 사태에 순수한 광주시민이 아닌 제3의 세력이 개입했고 그 세력이 진압군과 시민들을 향해 총상을 가해 폭동을 촉발시켰다면 이 사건의 역사적 해석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등장할 소지가 있다.
4·19를 통해 학생들의 봉기를 지원하고 충동해 온 일부 군부의 움직임이 학생운동에 대한 실망으로 군을 동원하여 5·16을 기획했고, 당시 장성급은 모양새를 위한 추대 정도로 앞장 선 쿠데타였다면 특정 개인에 의한 구국혁명이니 하는 식의 짜 맞추기 군사정변 역시 그 대상의 증언들이 세대가 가기 전에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누군가는 이런 역사적 조명은 내 일이 아니니 적당히 덮어두고 해석하자거나 지나간 일을 자꾸 들춰서 무슨 이득을 얻겠느냐고 득실을 들고 나오는 판단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어제 일을 내 알바 아니라거나 조상이 무슨 일을 했건 오늘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흐름의 이치를 무시하고도 저절로 내일이 만들어지고 올바른 변화를 따라 갈 수 있다고 여긴다는 건 막가파식의 자포자기와 같은 자세다. 일본의 요즘 작태가 그 꼴이다.
모든 일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고 그 근본 위에 새로운 생각과 행동이 또다른 에너지로 변화를 찾아가고 창조를 이루는 게 세상의 이치다.
지금 5월의 하늘이 말끔하지 않은 것은 자연의 하늘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은 바라 볼 우리들의 눈 망막에 낀 탁하고 그릇된 이물질과 심성 때문이다.
농부는 어제 밭에 심은 종자가 어떤 종류이고 어떻게 가꾸어 무슨 열매를 거둘지를 알아야 하고 어부는 어제 잡은 고기가 무슨 고기이며 어떻게 식탁으로 옮겨 가야할지를 알아야 어장을 이룰 수가 있다.
만약 아직도 정치적 힘을 가진 어떤 세력들이 있고 그 지역이나 세력이 맑아야 할 5월의 하늘을 서성거리며 우리들의 하늘을 가리고 있다면 우리는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 그 흐리게 막고 선 힘을 걷어내야 한다.
혹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그저 언론에서 뉴스거리로 등장하다가 사라지는 사건들에 대해 그 진위를 의심하거나 사실 파악을 체념하는 경우가 있다.
권력자들이 개입된 접대 의혹이나, 국가권력의 개입여부를 둘러 싼 진실들, 패자는 속옷마저 발가벗겨야 하지만 승자가 깔고 뭉개는 캄캄한 통로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승자가 패자와 서민들을 향해 '네깟 것들이 뭘 알려고 하느냐'고 하면 그뿐인 세상이다. 민주주의는 투쟁에 앞장 선 투사의 정치입신을 부추기는 도구처럼 전락했고, 그들에게도 권력이 주어지면 근엄하게 휘장을 둘러치고 자신들의 치적을 위해 칸막이를 해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이고, 권력이며, 위임 받은 진실이라도 모두 차지하겠다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결국 그들은 표리부동한 언행을 통해 공동체의 불신을 조장하고 민주라는 이름을 팔아 챙기는 권력자의 역사를 만들지만 함께 수명을 누려야 할 대중은 이를 제지할 세월이 모자란다. 함께 법이나 권력으로 따지거나 맞설 수 없는 사람들이 곧 약자다.
그런 대중이 분노하면 아예 공동체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 각오로 일시적인 붕괴와 단죄를 할 수는 있지만 궐기의 그 순간뿐이다.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어서고, 선진국을 운운하는 지금에 와서도 진실과 허위에 대한 사리판단이 무너지고, 여전히 권력 앞에 눈과 귀를 막는 세상은 극복되어야 한다. 지금 5월의 저 하늘은 그걸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김한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