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면 보다 더 큰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 아닐까? 하늘도 땅도 그 어떤 사물도 마음은 첫째 이러한 것들을 모두 불러올 수가 있다. 우주만물이 형상으로 그치는데 비하여 마음은 온갖 것을 다 만들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형상과 무형물의 경계는 무엇인가? 그 정체성을 따지면 형상은 형상이요 무형물은 무형물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형상의 고착성보다 무형의 유동성에 매력을 느끼고 더 친근해있는 것을 안다. 가질 수 없는 물건에는 냉철한 포기를 결정하다가도 그 포기의 무형적 마음에는 애절함과 분노와 더러는 고귀한 사랑을 생각한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인간은 사유(思惟)의 열정을 가지고 어딘가에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이다.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마음을 가지는 일이다. 적다(작다)고 물건(물형)이 아니라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자유로운 자리에서 곧바로 온갖 사단을 지을 수 있는 일이 못 되는 형상과 사물은 크다고 할 수 없다. 산과 물이 또한 어떤 자연형상이 영원할지라도 마음의 무량 무한한 창조의 솜씨에 따라갈 수가 없다.
우리들은 무엇보다 마음을 갖는 일이 으뜸이다. 좋은 물건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절절한 욕망이 있다면 겁낼 것도, 못 가져 실망할 것도 없다.
요술이 별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한을 풀어주고 천금을 안겨주는, 크고 제일가는 손이, 물건이 있지 않은가! 이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두려운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되는 일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있을 뿐이다.
도둑이 성인군자 되기보다 쉽다고 한다면 그 도둑 되는 시초는 일순간의 마음에 있었을 것이다. 도둑질로 진수성찬의 회심의 미소가 마음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더 쉬운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마음은 이것조차 깨닫는다. 우리들은 이제 속도감이 빠른 마음의 창의적 묘술(묘법)을 손에 스스로 가지고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믿는다. 가만히 앉아서 감나무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감나무가 감을 달아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나무는 이러한 사념에 침잠할 수도 없지 않는가.
하지만 감나무를 원하는 마음자리에 이미 이 일의 시작과 싹이 트는 것이다. 열매를 갖게 되는 시간에 노력과 체념과 그리고 재기와 도전에 대해서 우리들은 좌절보다 자유의 환희와 삶의 은혜를 느껴 살아간다. 혼자가 아니라 주변을 사랑하게 된다.
물형을 가져오기 이전에 마음의 씀씀이 그 길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들은 미사일을 개발할 마음과 이에 따르는 두뇌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핵무기에 대한 국제협정의 벽을 허무는 마음의 작동은 늘 우리들에게 자재(自在)해 있다. 다만 살상무기 생산의 오해보다 인류번영을 도모하는 공산품 생산의 마음을 더 즐기고 있다.
핵이 온 누리의 태양인양 자만에 젖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아무래도 마음의 영광이 아닌 것 같다. 북한이 마음의 고삐를 쉽게 세상의 화친에 돌리려 하지 않는다.
끝내 이러한 마음자리가 핵 미사일에 의한 군비경쟁의 꿈은 이뤄질지라도 인류평화의 총체적 경쟁에서 이미 세계에 뒤지고 있는 것도 확실하다. 그것은 마음 씀씀이의 결과적 국력의 지표로 드러난다.
한국의 1인당국민총소득 17.175불에 비하여 북한의 이것은 960불이다. 국제 화친을 마음의 기저에 둔 한국의 무역총액 7천억 불에 비하여 부존자원이 우위면서도 북한의 무역총액은 34억불에 불과해 군비 하나에 몰두한 마음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폭탄이 양식을 원천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의 순서와 종별이 있다면 이러한 마음 역시 마음으로만 치환될 수 있지 않는가! 우리들의 본성이 자유를 원하는 창조의 에너지가 곧 마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