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윤 수기하라
치윤 수기하라
  • 거제신문
  • 승인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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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요즘 일본 아베총리를 비롯해 여러 극우 일본 정치인들이 마치 경쟁이나 하듯 줄줄이 제국주의 침략역사를 미화하고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망언을 일삼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문득 지난 2차대전에서 죽음의 위기에 몰린 6000여 명의 유대인들을 구한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일본인 총영사 치윤 수기하라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치윤 수기하라는 1940년에 리투아니아 총영사로 있었다. 어느날 그가 일어나 보니 폴란드에서 도피해온 유대인 망명자들이 영사관 앞에 모여 있었다. 유대인들의 유일한 목적은 나치의 추격을 피해 일본을 통해 다른나라로 가서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수기하라는 즉각 일본정부에 이 소식을 알렸지만 일본정부는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을 목숨처럼 여기는 일본인들이 정부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곧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이었고 그가 가진 모든 명예와 지위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명령이나 자신의 명예보다 유대인들을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29일동안 꼬박 통과 비자를 발급하는 일에 매달렸고 비자를 발급하느라 끼니를 대충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거의 잠도 자지 못했다. 그 시절 한 영사관에서 한 달에 300개의 비자를 발급하는데 수기하라는 하루에도 300개가 넘는 비자를 유대인에게 발급해줬다. 그로부터 한 달, 일본 정부는 수기하라를 본국으로 강제 소환했다. 그는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순간에도 비자에 사인을 해주고 있었고 기차가 역을 출발해서 더이상 사인을 할 수 없자 아예 영사관 비자 스탬프를 던져주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일본정부의 명령을 어겼다는 불명예와 수치 그리고 해직이었다. 그는 그렇게 외교계에서 쫓겨나 파트타임으로 통역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한 유대인이 6000명이 넘었고 이 숫자는 독일의 집단수용소에서 목숨을 건진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한 사람의 힘이 6000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돈도 명예도 아름다움도 다 사라지지만 사람이 그의 삶을 걸고 결단한 용기있는 일은 역사에 길이 빛난다. 1985년 이스라엘 정부는 치윤 수기하라에게 이스라엘 최고의 훈장인 '열방중 의인'의 상을 수여했다.

2차대전 주범중 하나인 일본은 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우리나라와 중국 사람을 비롯한 무고한 아시아인들이 일본군의 손에 죽음을 당했는데 그 숫자는 독일군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인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200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왜 일본인들이 이렇게 지난 2차 대전이 침략 전쟁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오히려 정치적 혼란에 빠진 아시아를 구하려 했다는 둥, 침략의 정의는 보는 쪽에 따라서 다르다는 둥 궤변을 늘어놓는지 가만히 살펴보니 이것은 그 인간들이 좀 살만해지고 그들의 영향력이 세계를 흔들 수 있다는 오만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 먹고살기 바쁜 나라고 경제적으로 약소국이었다면 과연 그들이 이토록 뻔뻔하게 과거를 부인하고 침략역사를 아시아 구원의 역사로 바꿀 것이며 독도를 비롯한 영토분쟁을 조장해 세계적 이슈로 만들 것인가. 어떤 주장을 펼쳐도 지지않고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나름 자신감의 표현인 셈이다. 나는 그들의 망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일본인들의 무모한 자신감의 근거가 두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그들의 그 자신감을 꺾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망언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일본인들의 빈번한 망언은 그들 자신을 세뇌시켜 과거 침략전쟁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믿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모한 자신감을 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부로부터 나오는 자성의 소리다. 그들이 약자라고 낮춰보는 우리가 백날을 항의하고 불쾌하다고 떠들어봤자 일본 극우 정치인들은 눈도 깜박 안할 것이다. 진정한 반성은 과거를 사과하라고 윽박질러서 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들이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자신의 삶과 명예를 걸고 6000명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그들의 조상 치윤 수기하라의 용기를 닮았으면 한다.

일본군이 아시아를 짓밟을 당시 삶과 명예를 걸고 유대인 6000명을 구했던 용기 있는 일본인 치윤 수기하라가 있었듯이, 오늘날 일본의 얼토당토않은 망언의 행진을 용감하게 거부하고 자국 정치인들의 잘못을 세계에 알리고 용서를 구하는 정직한 치윤 수기하라와 같은 일본인들이 여기저기서 불일 듯 일어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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