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논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갑을 논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 거제신문
  • 승인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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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아마 어느 우유회사의 횡포가 오래 묵어 온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형평성에 대한 분노를 자극한 단초가 아니었나 싶다.

이 논쟁이나 갈등은 다분히 경제적인 거래관계에서 비롯되어 지금 정치적인 수식어로, 선동적 매개와 갈등의 기준으로 마구 확산되고 남용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어느 대상이든, 양과 음, 좌와 우, 강과 약, 명과 암, 상과 하를 적용하다보면 해당되지 않을 게 없는 데 좌우의 갈등에서 갑을의 대립적 해석까지 걸핏하면 갈등을 유발하는 이벤트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지금 문제 삼고있는 갑과 을의 성질은 다분히 거래상의 순서나 상대라기보다는 강자와 약자에 대한 모순적 해석이 주류이다.

거래상에 있어 다소 유리한 쪽이 갑에 서고, 을은 조건을 수용하는 형편인 것이 상례지만 때로 갑이어야 할 대상이 을을 자처하고 얄궂은 계약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계약상의 독소적 조항들은 보험에서부터 부동산까지 거래의 까다롭고도 예민한 사안일수록 한쪽이 유리하도록 저울추를 기울이는 게 다반사다.

계약을 야무지게 성사시키려면 계약 내용의 조항들을 찬찬히 훑어봐야 하는데 어떤 경우는 그런 걸 읽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분위기에서 덜렁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런 엄청난 내용들을 모두 까발리고 수정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방대할 것이고 억울함을 경험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 뭘 두고 갑과 을을 말하고 정치가 팔을 걷어붙이는가를 봐야하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다소 모험적이고 위험한 논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크고 작은 규모의 기업들을 향한 색깔론이나 약자를 부추기는 성급한 논쟁은 사회의 또 다른 갈등을 증폭시키고 경솔한 정치의 모순을 야기할 공산이 있다.

어쩌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경제민주화니, 기업의 정도경영이니 하는 제안들이 등장했다가 그 환경적 영향으로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불균형과 불평등의 볼멘 소리들이 나오다보니 그렇잖아도 척박한 정치무대에 갑을이라는 호재가 생겼고, 여기에 여야가 생색내기에 온갖 구실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사회구조의 메카니즘을 마구 흔드는 논쟁이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을이 갑을 치면 당연한 듯 너도 나도 갈등의 에너지를 대립하는 빌미를 만든다면 그 후유증에 대한 상상은 도를 넘을 일이다.

여기에다 좌우논쟁에 가담하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가세하면 단순히 약자를 보호하려던 발상이 공동체의 구도를 흔드는 근본적인 문제를 서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공연히 빈곤한 국정철학을 메우느라 무분별하게 사회구도를 충돌시키거나 문제를 야기해 놓고 빠지는 어리석음을 계속할 게 아니라 문제가 많은 분야의 부조리를 척결하고 쇄신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것과 갑을 논쟁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는 권력기관과 교육, 언론, 복지 등 해묵은 비리관행을 여전히 고수하는 기득권 세력들을 뻔히 보면서 걸핏하면 기업과 경제적 축을 부추기고 흔드는 정치적 위세는 결코 사회발전의 에너지가 되지 못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해석은 경제적 우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평등하게 재단해야 할 법집행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인데 가끔 방향성조차 모호한 정치권의 지적들이 해괴하기 짝이 없다.

교육환경이 돈의 질량으로 좌우되고, 복지사업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모두 정권의 정책들과 집행의지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군과 검경, 교육과 언론, 복지와 문화진흥의 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고는 어떤 쇄신이나 개혁도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경제환경의 현장에 있는 기업가들의 금권이 빚어내는 '갑'의 횡포는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경제행위의 결과물들이지만 그것을 다스릴 구조부터 허물어진 힘으로는 함부로 '갑을'을 논하고 재단하려 들면 안 된다.

거기다가 민심을 대변한다는 여의도 국회가 그런 무분별한 논쟁에 기름을 붓는 에너지로 가세한다면 언젠가는 적반하장의 독소들이 스스로의 목을 조일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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