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죽는 거야 당연지사지만 일부러라도 외면하고 싶은 것이 죽는 이야기일진대 현재는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이 대세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굶주림과 싸워야 했고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허리도 잘 펴지 못하며 하루종일 삽질해야 했던 조상들이 들으면 경악할 일이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농촌에서 생산하는 먹거리도 다수확 품종으로 경쟁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자는 데 열을 올리고 있고 체험마을이나 실버타운 조성 등으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나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시골을 뛰쳐나와 도시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주말에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번듯한 놀이공원 보다는 흙냄새 나는 시골마을로 향하고 가축들 똥냄새에 코를 쥐어잡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며 지친 삶을 치유하고 돌아간다.
이런 덕분에 텃밭 인기가 시세말로 장난 아니다. '남새밭'이라 부르든 '키친 가든'이라 부르든 이런 텃밭은 옛날부터 어느 나라에도 있어 왔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 약용 식물을 비롯한 신선한 야채를 손쉽게 식탁에 올리기 위해서였으리라.
하지만 요즘 텃밭의 의미는 다르다. 신선한 야채야 계절과 상관없이 먹고 넘치는 시대이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다.
크기가 크든 작든 잔잔한 수고가 끊이지 않아야 함에도 굳이 텃밭을 일구는 것은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바람에서 비롯되었고, 더불어 시간과 돈을 따지는 셈법보다는 자라는 생명의 기특함으로부터 기쁨을 느끼고 작은 결실에도 감사하는 심적 보상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은 자연으로 향하는 우리의 손길이나 마음보다는 자연이 겪어내는 수고에서 얻는 가르침이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충족돼야 한다.
햇빛 물 공기 토양 영양분 그리고 농부의 손길 등.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충족되어도 바람이 불지 않는 상황속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 그의 생명활동을 왕성히 하여 성장을 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정치도 그 원리는 똑 같다. 견제할 수 있는 세력, 흔들어 주는 바람이 없다면 삶이나 정치도 썪을 수밖에 없으리라. 당신이 아프고 힘들다면 자연에서 가르침을 얻어 힘을 내 보자.
삶이란 살아 보고 있어서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반드시 굴곡이 있는 법이고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역경의 순간에도 맞닥뜨려지지만 그러한 것들을 인내하며 버티고 통제하면서 때로는 허망한 결과도 수용하는 아량도 키워가면서 인간 역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자연에서 보듯 완벽한 조건이란 자신을 흔들어대며 힘들게 만드는 바람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무슨무슨 시대니 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이러한 시련을 겪어내는 각고의 노력없이 얻어지는 가치있는 삶은 있을 수 없다.
시골의 너른 논가에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셨을 것이다. 어찌 보면 햇볕을 가려 작물 재배에 방해가 될 것 같지만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큰 버드나무 아래에 부는 적당한 바람과 시원한 그늘로 오히려 작물이 잘 자란다고 한다.
또한 진딧물이 많아 키우기가 까다롭다는 무궁화도 버드나무와 같이 키우면 따로 약을 치지 않아도 진딧물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버드나무와 같은 동반자를 곁에 두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겪어내어야 할 수고나 아픔이 한결 덜어지지 않을까? 지지고 볶고 살아가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손잡고 살아가는 지인들일 수도 있고, 열정을 불태우는 학문의 세계일 수도 있고, 또는 온전히 의탁하고자 하는 당신의 신앙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서로를 어루만지고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삶을 버티며 키워 나간 뒤 결실을 맺어 다 내어 주고 다음 세대의 탄생을 위해 건강한 토양의 일부로 온전히 자신을 내어 준다면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웰다잉(well-dying)'이 아닐까 싶다.
잘 살고, 잘 죽는 것! 자연이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