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인으로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축구인생을 불태운다는 각오로 경남과 거제지역 축구인들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5월 경남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선임된 김명덕(57) 씨. 전무이사 취임 후 두 달여 동안 창원과 거제를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 전무이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계의 마당발이다.
김 전무이사의 발탁은 대한축구협회는 물론 부산과 경남지역 축구인들과 맺어온 끈끈한 유대관계와 축구행정가로서의 전문성 때문이라는 것이 지역 축구인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 전무이사는 "두 달 전 협회로부터 전무이사를 맡아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밤잠을 설치며 고심을 했다"면서 "적지 않은 나이에다 축구행정을 떠나있었던 세월이 너무 길어서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김 전무이사가 결심을 굳히는데는 아내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와이프에게 말을 했더니 '협회일을 하지않는 지금도 각종 축구대회 관람을 위해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 집을 비우는데 고민할 게 뭐있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싶은 일 마음껏 해보라'고 했다"며 "곧바로 협회에 전화를 걸어 전무이사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부산 구포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축구를 접한 김 전무이사는 어릴 때부터 소위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0년 체육교사의 눈에 띄어 축구부에 가입한 뒤 센터포워드로 출전한 제1회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같은 해 열린 제23회 종별축구대회에서는 최우수 선수로 뽑혀 부산에서 제일 축구 잘하는 초등학교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후 동래중학교를 거쳐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중·고교 시절에도 고등부 국가대표 상비군, 청룡기대회 득점왕 등에 올랐고 대학시절에는 한일 정기전에 선발돼 그라운드를 누볐다. 1979년 대학졸업 후 국가대표 충무팀에 선발되는 영예를 안은 그는 이듬해 대우 축구단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선수생활을 마감하고서도 결코 축구를 떠날 수 없었다는 김 전무이사는 1989년 부산 아이콘스 축구단의 전신인 대우로얄즈 축구단의 관리과장과 사무국장을 맡아 축구행정에도 눈을 뜨며 현장과 프런트 모두 섭렵한 축구인이 됐다.
10여년 전 화려했던 축구인생을 접은 김 전무이사는 옥포동에서 구들장 생삽겹살 식당을 운영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생각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 전무이사는 낙후된 지역 축구발전과 국가대표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지난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전했다. 또 N리그 소속팀과 대학·고등부 축구팀의 동계훈련지로 거제를 추천하며 이들의 유치에도 큰 힘을 보탰다.
그는 "경남축구협회는 학원 스포츠가 있기에 존재하는 단체"라면서 "낮은 자세로 봉사하며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구협회의 발전은 물론 지역 축구발전에도 이바지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