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가?
  • 거제신문
  • 승인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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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한국외식업거제지부 사무국장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회식 자리에 앉는다. 지글지글 기름이 빼이고 노릇노릇 익어가는 살코기의 유혹을 잠시 접어두고 술잔을 들었다 놨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사장님의 일장 연설로 첫잔의 안주로 삼는다.

속이 찌릿찌릿 감겨온다. 저 맛나게 구워진 고기 한 점 쌈에 싸서 넘겼으면 하루 종일 시달린 맘속이나 달랠텐데 길게 뭐라고 중언부언 늘어놓던 사장님은 결국 마지막엔 “우리가 남이가!” 하고 건배사를 마무리 한다. 노릇노릇 고기를 쌈 싸 목구멍에 넘길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번에는 부장님이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오늘같이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리며.....”

또 건배사가 시작된다. 결국 마무리는 우리가 남이 아닌 것을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작정 ‘위하여!’로 마무리 된다. 이쯤 되면 부하 직원들은 외치고 싶어질게다.

‘사장님, 부장님! 우리가 남이냐구요? 그럼 남이지, 가족은 아니잖아요? 제발 고기 좀 편히 먹읍시다.’

이렇게 끝나면 다행이다. 어김없이 부장님은 사장님 눈치를 보며 “이번에는 막내가 한 번 해보지?” 신입사원은 하얗게 질린 머릿속을 굴러가며 어찌 어찌 말을 이어나가다 결국엔 “위하여!”로 끝을 내고 안도의 숨을 쉰다. 그나마 부장님의 돌림잔이 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떤가?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직장 남자들은 허탈한 속웃음을 웃고 남의일 같지가 않아 안타까울 수도 있겠다. 회식이 시작된 지 불과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구성원들이 형님 동생이 되어 있고, 정말 건배사처럼 남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맛나게 구워지던 연한 고기는 시커멓게 타버렸고 불판에 올려지지도 못한 생육은 검붉은 인상을 쓰고 담배연기에 괴로워하고 있다. 대부분 이런 분위기들은 술에서 깨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나마 회식 자리에서 형제의 연을 맺었던 아물아물한 기억 덕분에 인간적으로 부장님과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 간격은 얼마만 큼일까? 업무적 이해관계에 직면했을 때 가물가물한 형제애가 도움이 되어나 줄지 기대된다.

이러한 회식 문화는 남자들의 군대 문화가 더해지고 급격한 산업화와 사회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직장인들의 몸부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격한 계급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되고 사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을 다독거려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가족같이 일해 달라는 부탁을 술자리를 빌어 요구한 것이다.

사실 술자리에서만큼 솔직한 마음을 털어 내 보이기 좋은 자리도 드물다. 그래서 상사는 부하 직원의 마음을 헤아려 수용하고 직원들은 회사의 속사정과 경영방침을 이해해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만 마련된다면 백점짜리 회식이 되었을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 만나면 언제나 반갑고 비록 초면이라도 메마른 악수보다는 떠들썩 술 한 잔 건네며 사골국물만큼 뜨거운 식사 분위기를 만들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렁찬 건배제의와 리드미컬한 화답은 진짜 명품 건배이고 조직을 탄탄하게 묶는 리더들의 식문화 코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옆 자리의 손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친 건배제의와 난잡한 회식문화는 우리 사회 특유의 동지의식을 넘어선 패거리 의식의 표출 그 이상도 아닌 저급한 식문화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식습관이나 전통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앞서 간 개척자들의 고된 발걸음, 선배들의 옳은 발자취, 올바른 이정표가 필수적이다.

이제 지금부터 우리가 패거리식 건배문화를 바꾸어 가야 한다. 팍팍한 구조 속에 일을 하다 보니 힘이 들고 하소연하고 싶은 것들을 술자리에서 풀고 싶어한다.

그것이 갑으로부터 이어지는 건배사의 외침이 되었던 을로부터의 피해의식이 되었던 동류의 외침일 것이다. 이런 아픔들까지도 포용해주는 아름다운 술자리를 가져보자.

이제 술자리에서 짧은 에피소드 하나로 부하직원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부드러운 위로의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로 착한 건배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진정 우리가 남이 아닌 ‘우리’가 되어 있을 회식 자리를 자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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