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년 맞은 청년
두려움 없는 행보로
의욕과 자신감을 갖고
권력·부정에 당당하게
직필정론을 추구하며
시민사회 발전에 공헌
언론인들의 사표(師表)이자 한겨레신문의 초대 발행인을 지낸 청암 송건호 선생은 국내 언론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53년 언론에 몸담은 이래 주요 일간지 논설위원과 편집국장을 거쳐 1988년 '한겨레신문' 발행인 겸 인쇄인, 회장 등을 지냈다.
특히 그는 지난 19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시 150여 명의 기자가 강제 해직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던졌다. 이후 재야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월간지 '말'을 창간하는 한편 1986년에는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이듬해 '6월 항쟁'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다.
청암 선생이 이처럼 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언론인으로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이 정정당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강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을 당해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욕과 자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는 말을 남겼다.
군사정권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말년에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언론인으로서 거침없었던 그의 삶의 궤적은 그가 남긴 말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청암의 두려움이 없었던 삶. 거기에는 의욕과 자신이 함께 했다. 청암처럼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로 백범 김구 선생을 들 수 있다. 백범이 가장 좋아했던 말 중에 '득수반지부족기(得樹攀枝未足奇) 현애철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나무에 올라가 가지 끝에 서는 것은 별로 기특할 것이 없다. 벼랑 끝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다'라는 뜻이다.
백범 선생은 일본 순사를 죽일 때 이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고 그의 일기에서 전하고 있다. 또 안중근 의사나 윤봉창 의사 등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낼 때도 이 말을 전했다고 한다.
청암과 백범 모두 몸과 정신이 건강했기 때문에 의욕과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거제신문이 지난 7월21일로 창간 25년을 맞이했다. 지난 1989년 7월20일 창간한 거제신문은 4반세기를 거제시민과 동고동락하며 젊고 건강한 신문으로 성장했다.
거제 지역신문 중 가장 많은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빠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임직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왔다. 수많은 사건, 사고의 현장을 거제신문 기자들이 누볐으며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불철주야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거제시민들이 가장 많이 열독하는 신문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창간 25년을 맞은 건강한 거제신문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선배들처럼 '두려움 없는' 건강한 신문으로 나아갈 방침이다.
의욕과 자신감을 갖고 거제사랑을 실천하는, 거제시민들과 함께하는 젊은 신문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꽉 조이기로 했다.
과도기에 선 거제시에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 풀어가기 위해서는 권력에 맞서서는 두려움이 없고, 힘없는 시민들을 향해 고개 숙일 줄 아는 올곧은 신문으로 거제시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특히 거제신문은 지난 25년 동안 이룩한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신문이다.
권력과 부정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지만 시민과 독자의 눈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건강한 신문이 될 수 있도록 주변의 많은 성원과 격려 또한 필요할 것이다.
거제신문은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나태하지 않도록 시민과 독자들의 따끔한 충고와 채찍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신문으로 거듭나 거제시와 시민사회 발전의 밀알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