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어느 캠프장
북미 어느 캠프장
  • 거제신문
  • 승인 20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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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거제YMCA 사무총장
시내 집에서 고속도로를 한 시간 반을 달려 골든얼스 레이크의 주립공원 캠프장에 도착한다.

시더소나무 숲이 울창한 캠프장이다. 입구초소 같은 작은 관리실 창이 열리고 그 속에서 예약번호를 확인한다. 나는 차 안에 앉은 채 이름과 예약번호를 답한다. 관리인은 확인을 끝내고 캠프사이트의 약도가 그려진 브로슈어와 이용규정이 적힌 서류 한 장을 건네면서 지정된 65번 사이트로 가라고 일러준다.

캠프장내 시속 30km 표지판과 지도를 보고 천천히 차를 몰아 숲속 오솔길을 따라 들어간다. 캠프 사이트의 1번 표지는 오른편, 2번 표지는 왼편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아 홀수는 오른편, 짝수는 왼편임을 금방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찾아들어간 1/3쯤의 지점에 65번의 표지 말뚝이 서는 것으로 봐서 이 숲속 캠프장에는 약 200여개의 캠프사이트가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65번 사이트로 좌회전하여 차를 주차하니 텐트 칠 맨땅의 공간하나와 나무로 된 야외용 탁자 하나, 그 옆으로 장작을 피울 수 있는 화덕 하나가 있다.

이것이 전부다. 65번과 마주한 64, 66사이트는 65번의 출입구와 길을 사이에 두고 어긋나게 마주하며 4~5m씩 떨어져 있고 홀수로 우리와 나란한 63과 67은 2~3m 간격으로 이웃하고 있다. 그 안에 텐트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 사이트에선 보이지도 않는다.

적막한 속에서 잠시 아이들과 소란을 떨며 텐트를 친다. 그리고 야외용 식탁에 앉아 브로슈어와 캠프장 규정집을 훑어본다. 동쪽 500m 지점에 호수가 있고 남서쪽으로 돌아오는 산책로가 있다. 호수에는 낚시가 가능하고 물놀이도 가능하다.

물론 이미 홈페이지에서 사전 확인하고 아이들과 놀기엔 안성맞춤으로 알고 온 곳이긴 하다. 한쪽짜리 캠프규정도 마저 읽는다. 대개가 비슷비슷한, 화장실과 샤워장 긴급공중전화 등의 캠프장 규정이지만 꼭 한 두 가지는 자신들만의 특이사항을 가지고 있기에 굵고 진하게 인쇄된 조항은 주의해서 본다.

호수의 물이 차가우니 사전에 적응 마사지를 충분히 하라는 것과 수상 안전요원이 없을 때는 보호자가 꼭 같이 물 안에 들어가라는 것, 모닥불의 장작은 지정된 땔감나무 창고에서만 가져다가 쓸 것, 불 씨앗은 남겨두지 말 것, 야간의 행동수칙과 가끔은 곰이 나타나기도 하니까 그때는 뒤 페이지의 퇴치요령대로 하라는 것 등이다.

정오를 지난 한 낮인데도 숲 그림자가 짙은 캠프장 안은 오히려 서늘하다. 아이들 성화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 기구를 챙겨 호수로 향한다. 지나는 길에 보니 66번과 67번의 캠프사이트에도 차들이 주차 되어져 있다.

우리 바로 옆 사이트인 67번에는 중년의 부인이 야외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조용한 모습도 보인다. 단출한 차림으로 봐서 남편과 둘이만 왔거나 혼자 온 듯싶다.

캠프장 숲을 벗어난 호숫가는 햇볕이 내리 쬐는 아담한 모래톱이 있어 금방 몸이 데워지고 등짝이 따끔하다. 경고문에서 읽은 대로 충분한 마사지와 예비운동을 하고 물에 들었는데도 정말 물이 차갑다.

물 안에서는 10분 이상을 더 놀지 못한다. 그늘에 들면 서들하고 모래톱에 앉으면 볕이 따가워 파라솔을 펴고 허리 밑만 햇볕에 내 놓으니 딱 맞춤이다. 한참을 모래톱에서 뒹굴다가 저녁 먹기 전에 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하고 나선다.

캠프장의 숲길을 벗어나니 임도 같은 제법 큰길에 닿는다. 이 길은 호수의 오른편에서 북쪽으로 따라 올라가도록 나란히 놓여 있고 북쪽 끝에서는 산자락을 타고 왼편으로 돌아오는 오솔길로 이어져 캠프장이 있는 남쪽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개울을 이은 통나무 다리와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까지 다양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길 따라 걷는 재미를 더한다. 간간히 자신의 종목별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도 만난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도, 보랏빛으로 영글어 가는 블루베리도, 이름 모를 꽃들도 무수히 보며 가는데 명판 하나가 눈에 꽂힌다.

<These are the food for wild animals. Please do not touch them!> "이것들은 야생동물의 먹이입니다. 손대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어 가까이 가서 보니 블루베리가 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사람만큼이나 곰도 잘 익은 블루베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블루베리가 익으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만 왠지 금방이라도 곰이 머리를 쑥 내밀 것 같아서 서둘러 아이들을 재촉하여 캠프장으로 돌아온다.

숲 속에 해거름이 진다. 아이들을 시켜 장작을 가져오게 하고 화덕에 불을 피운다. 소나무의 타는 냄새와 소리가 참 좋다. 마을에서는 10시 가까워서야 해가지는 서머타임 계절인데 숲이 짙어서인지 8시도 전인데 어둑해지고 선들 하다.

그래서인지 화덕의 모닥불이 소시지와 스테이크를 굽고 물을 데우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준다. 밝음과 따스함으로 캠프의 가족들이 둘러앉게 하는 정겨움이다.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얻을 수 없는 축복의 기능이다. 주위가 적막 같은데 우리만 도란도란 얘기하다 기타를 치며 캠프송도 함께 부른다.

얼마가 지났을까? 살며시 들려오는 낯 선소리 "Excuse me. 실례합니다."에 고개를 돌려보니 중년의 여인이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서있다. 그리고 "캠프장규정을 읽지 않았냐?"고 하며 랜턴을 비춰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10시 이후에는 모두의 취침을 위해 정숙할 것.'의 규정조항이 또렷이 보인다.

"미안합니다. 규정집은 봐서 알고 있었지만 미쳐 시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과하니 "너희 캠프사이트에서 무엇을 해도 상관없지만 10시 이후로 자신들의 텐트까지 사람의 소리가 넘어 와서는 안 된다"며 정색을 하고 돌아서 간다. 불과 2~3m의 거리인데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 배려해야만 내 것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분위기가 조금은 머슥해 졌지만 숲 안 캠프장의 공동 질서를 지키는 것과 또 이를 어겼을 때 지적하고 시정하게 하는 것, 시정이 되지 않고 반복되거나 불가한 것일 때는 퇴장 조치하는 캠퍼의 권리와 의무를 곱새기며 사그라지는 모닥불과 함께 잠드는 캠프장의 밤이다.

해병대 체험 캠프장에서 다섯 청소년이 목숨을 잃고 해수욕장 캠프장에선 만취해 돌진한 차량에 아빠와 캠핑을 하며 잠자던 두 소녀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캠프장 곳곳에선 쓰레기가 넘쳐나고 밤새도록 취중 고성방가가 이어진다는 보도다.

자연에서 쉼과 평화를 얻어 자연인의 참 생기와 품성을 회복하는 캠프가 아니라 도시만 벗어난 또 다른 도시인의 대리만족 행위와 자연에 대한 횡포를 보는 듯하다. 짧은 경험이지만 북미의 저 캠프장이 되새겨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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