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 중앙신문 5월 17일자에 실린 윤영씨의 글을 봤다. 씁쓸했다. 지식인의 가벼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는 것 같아 영 개운치가 못했다. 한 사람에 대한 평으로 오랜만의 외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음이 또한 마음이 아프다.
윤씨는 ‘이봐, 바보들, 이제 경제야’라는 글을 통해 현 정권을 지겨운 정권으로 표현했고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는 거대한 소망이 주가 상승을 가져왔다”고 썼다.
또 그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대기업의 CEO를 20년 넘게 한 실물경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공약위에서 대권레이스를 펼치고 있다”고도 했다.
“능력보다는 도덕성과 개혁성을 택해 실패한 쓰라린 지난 4년을 기억할 것”이란 표현은 그의 글의 백미라 할만하다. 흔히들 하는 속된 말로 “민주화는 많이 됐다”는 말이 떠오른다.
윤씨는 공적 직함이 없는 보통 국민에 보통시민이다. 보통의 사람이 현 정권에 대해 이같이 대놓고 신랄히 비난할 수 있는 자유.
윤씨는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윤씨가 맘껏 누리고 있는 이같은 -완성된 민주주의에서 가능한- 자유가 그가 그토록 지겨워하는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주의에 더욱 크게 기인하고 있음을 혹 생각해 보았을까?
윤씨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지식인의 글이 그렇게 정략적이고 그래서 더욱 스스로를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식이어서는 곤란함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윤씨는 최근의 주가상승이 참여정부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망의 결과라 했다. 이런 억지와 비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선동적이요 근거 없는 부화뇌동의 극치다. 경제를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경제적 언어의 유희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경제는 지표와 근거가 중요하다.
독자들이 코웃음을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가 가벼워지는 첫째 이유다. 윤씨는 이명박 대권후보에 줄을 서고 있음을 또한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그의 선택이다. 가타부타하는 것이 더 이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윤씨가 이명박에 줄을 서고 있음을 드러낸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능력이 중요하지 도덕과 개혁은 부차적인 것이므로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이명박을 선택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의 판단이니 존중해 주자.
그러나 ‘지식인 윤영’은 좀 더 생각을 진척시키고 좀 더 넓은 시야를 보여 주었어야 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언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할 때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이명박에 확실히 줄을 서고자 하는 ‘정치지망생 윤영’을 고집한다면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만….
어쨌든 이명박이 주장하는 그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고, 따라서 오히려 서민과 중산층에는 더욱 좌절의 시기를, 가진 자들에게는 더욱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러한 능력일 수도 있음에는 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까? 아니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다.
윤씨가 말하는 이명박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독재시대 개발리더십이요, 정경유착에 편승한 ‘강자논리’ 리더십 아닌가? 21세기 미래세대에도 이같은 리더십이 통할 것이며 국민들이 순응해 줄 것이라 윤씨는 믿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같은 독재적 능력 지상주의를 국민들에, 시민들에 강요해갈 것인가?
양극화 심화와 청년실업 등에 따른 서민경제의 어려움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 등에 따른 착시의 결과로 이명박의 능력(?)이 실존이상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같은 당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정치지망생 ‘보수 윤영’이라는 라벨을 이제 붙여야 할 것 같다. 지난 시절 윤씨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경선 불복, 탈당 재입당 등에 따른 도덕성 시비에 자신이 휘말린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같은 논리는 두 대권 후보들에 대한 비교를 빙자한 이명박 선택, 윤영 선택을 주입하고자 하는 정략성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도덕성, 개혁성의 선택이 4년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단정한 윤씨는 그래서 앞으로는 능력을 선택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교묘히 오버랩 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거제정가는 이명박에 줄을 서려는 정치지망생들로 분주하다고 한다. 확실한 이명박에 대한 구애작전. 이명박이 실패한다면 또 말을 바꿀 것인가?
그가 가벼워지는 두 번째 이유다.
윤영씨와의 인연은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씨는 부시장, 나는 내일신문 팀장으로 처음 만났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경선 불복하며 무소속 출마를 고민할 때 나는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을 때도 개인적으로 도와주었다. 당시 그를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너무 가벼워져 버렸고 너무 정략적이 돼 버렸다. 가벼워져버린 지식인은 추한 모습으로만 회자될 것이고 정략으로만 사고하는 정치지망생의 얼굴에는 탐욕만 이글거릴 것임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