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극우와 합리적 보수가 있고, 단순하게 친여 성격이 강하거나 국수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 등 그 행태가 다양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종북이나 극좌가 있고, 그저 친야 성격이 강하거나 단순히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성격, 순수한 진보개혁 등으로 다양하다.
과거에는 청년층과 노년층으로 갈라져 정치성향이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났던 경향도 이젠 세대나 계층을 저울질하기 힘들만큼 다양해졌고, 어지간한 정치평론으로는 설득하거나 참고할만한 담론으로 인정하지 않을 만큼 민도가 성숙해지고 정보나 지식도 해박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분들을 향한 정권이나 언론의 대처 방식은 어리석을 만큼 무지하고 구태의연하여 실소를 금치 못할 때가 많다.
민감한 정치상황을 호도하기 위해 쉽게 믿을 수 있는 남북갈등 문제를 대입시키거나, 다른 충격적인 뉴스로 예민한 허점을 덮으려하는 수법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호감도가 다른 세력을 매도하기 위해 동원하는 소위 식자층이라는 사람들의 평론이나 논리가 이젠 개그처럼 들린다고 실소를 자아내는 사람들의 의연함도 저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한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성향을 파악하고 그 구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다. 지금 소위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보수언론이 종편마저 차지하면서 민감한 정치현안마다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동원하여 민심을 거들고 나서는 것도 그 한 예다.
한때는 야당 집권기에 진보 성향의 언론인들이 신문과 방송을 장악했다가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물갈이가 있었고, 지금은 소수의 신문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가 보수 우익 일색의 행태로 바뀌어 버렸다.
이러다보니 집권층이야 민심몰이에 편한 잇점이 있겠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위 여론조사나 추측들이 아전인수식 편향을 띄기 시작했고, 진영논리에 갇혀버리는 농도가 진해졌다.
얼핏 보면 정권을 지지하는 여론발표나 언론의 그러한 흐름이 진영논리를 강화하고, 안정을 구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차 이런 세력들이 포플리즘화 되어 또 다른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민심의 화합을 저해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지금 '우리와 진영이 다른 쪽은 빨갱이가 아닌가' 하는 식의 극단적이고 몰지각한 극언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여론몰이식 횡포를 향해 치닫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편향된 진영논리들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른다. 아직도 전쟁 시절의 '인민재판' 이라는 몸서리치는 참극을 경험한 세대들이 엄연히 살아있고, 오랜 군사독재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쓰라린 경험들이 남아있다.
당시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욕망이나 입지를 위해 언론을 동원하고, 거짓 여론을 부추겨 역사를 오류시켰다. 그 극단적인 행태의 집단이 지금 북쪽에서 괴이한 나라꼴을 하고 있고, 그 경계와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는 우리로서 본다면 제발 지나친 진영논리의 확산과 남용은 막아야 한다.
토론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입을 막거나 호통을 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생각을 수용해보고 필요한 점을 조화시켜 나가는 자세를 가진다.
대화나 토론의 근본조차 모르고 '내가 힘을 가졌으니 내 생각대로 하겠다'는 것이 진영논리고, 반대로 '내가 반대편에 있으니 뭐건 부정하는' 것도 그릇된 진영논리다.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같을 수 있을까 마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조화하는 화합의 덕목이 존중 받고 가치를 인정 받는 풍토가 절실한 때다.
지금 정치를 중심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기심과 아집으로 진영논리에 갇혀 서로를 성토하고 대립하는 사람들이 어서 시야를 넓히고 관용을 아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서로 불통하고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면 중앙정치는 물론이고 지역끼리, 계층 간에 번져 갈 갈등의 악순환을 지금이라도 서둘러 막을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