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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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신문
  • 승인 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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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옛날 인도에 천만년이 지나도 종소리가 변치 않는 황금범종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 스님이 계셨다. 그러나 절반도 못 만들고 죽었다. 스님은 부처님께 다시 태어나 종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애원했다. 기특하게 여긴 부처님은 만들다 만 종을 땅에 묻어 두었으니 찾아 완성하라고 일러주었다.

스님이 세상에 왔을 때는 이미 몇 백 년이 지난 뒤라 도무지 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님이 실망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 범종처럼 생긴 황금빛의 꽃이 피어 있었다. 스님은 그 줄기를 따라가 파 보니 옛날 자기가 만들던 종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황금범종을 완성했다. 불교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호박은 박과에 속하는 1년생 덩굴식물로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을 통해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 고추 등과 함께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호박은 오랑캐(胡: 호)로부터 전해진 식물로 박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겉보기엔 덩치만 크고 촌스러워 못 생긴 사람을 빗대어 ‘호박’같이 생겼다고 놀리지만 영양면에서는 이만한 게 없다. 한방에서는 잘 익은 호박을 ‘가을 보약’이라 한다. 늙은 호박의 황색이 진할수록 항암작용과 항산화작용이 높고, 노폐물 배설효과가 있어 다이어트나 출산 후 몸의 부기를 빼는 데 효과가 있어 미인들이 좋아한다.

흔히 좋은 일이나 횡재수가 한꺼번에 생길 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는데 이는 호박열매·잎·씨·꽃은 물론 부드러운 줄기까지 안 먹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은 채소이기 때문이다.

호박꽃에 반디불이를 넣은 꽃초롱의 기억과, 거제의 향토음식인 풋호박 갈치국의 별미와, 시루떡에 말린 호박을 버무려 넣은 그 달콤함이 향수처럼 번져난다. 좋게 잘 늙은 호박처럼 우리네 인생도 둥글둥글 호박처럼 살다 갔으면 좋겠다.

며칠 전 충북 보은군에서 건장한 남자 2명이 들기에도 버거운 둘레 2m, 무게 77㎏짜리 초대형 호박이 생산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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