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헌장이 없는 도시의 자화상
시민헌장이 없는 도시의 자화상
  • 거제신문
  • 승인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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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인 변화의 하나가 생활구도의 도시화 현상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서울을 향한 엄청난 인구 집중이 있었지만 행정구도 개편에 의한 인구 비례 단위 승격이 시작되고 광역도시화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가 기존의 민족문화 구역으로부터 도시국가 형태로 바뀔 것이고, 마치 바람이 흩어졌다가 거대한 소용돌이 행태로 뭉쳐지는 도시인구의 유기적인 정보, 통신과 도시 집약적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여겼다.

아직 그 정도의 도시국가형 급전은 드러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런 행태를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고용 창출의 정밀함과 집약이 이루어져야 하고 도시행정의 첨단화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민주화를 외치는 정치가 늘 과거사의 발목에 잡혀 불신과 반목을 키우고 퇴행하듯이 내실이 없는 도시화의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 말마따나 건축자재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허장성세를 거듭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름대로 신선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부유층은 전원도시나 농촌으로 빠져나가고, 양계장처럼 늘어선 아파트먼트의 혼잡 속에 생애를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만약 도시국가 행태가 급진되고, 지금처럼 핵가족 중심의 밀집 형 도시가 늘어나면 그동안 공유해 오던 역사나 철학의 빈곤이 극심해지고, 자연적 재앙이나 인위적인 분쟁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을 초래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당장의 현안이 아니고, 당장의 일상이 소중한 도시인들에게는 의식주와 쾌락을 갖는 일이 중요해서 과거처럼 평원을 누비고 고지를 점령하는 전쟁 방식 따위에는 관심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급속히 달라져가는 생존의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사적 자료나 가치를 빗대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미래나 과거에 대한 시공 개념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로병사의 바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지극히 집체화되고 욕망충족이 짧아져버린 사회의 가치구도는 엉뚱할 만큼 변해버릴 것이 당연하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인간정신이나 존엄의 가치실종을 걱정하고 대비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 대비는 변화의 분수령인 지금부터여야 하고 비록 도시화되고 있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가 갈등하는 현재의 합리적 균형을 살려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살펴 본 지방도시의 행태를 보면 제대로 된 시민헌장조차 없는 지역이 허다하다고 한다. 만물이 생겨나고 존재하는 당위성의 첫 번째가 서로 다름을 알고 그 다름의 공존 가운데서 경쟁하며 상생하는 것이라면 요즘처럼 엇비슷한 지역단체들이 아무 행사나 사업을 서로 벤치마킹하면서 독자성과 기질을 버리고 사는 일은 옳지 못한 현상이다.

저 도시에서 유등을 띄우니 보기 좋다고 당장 수십 억 예산을 들여 유등행사를 하고, 저 쪽 도시에서 불꽃을 쏘아대니 우리도 수 십억을 들여 불꽃을 쏘는 한심한 사업들이 성행하고, 그 결과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빚을 늘리고 있다.

지금 국정을 비롯해 경솔한 복지시책이 말썽이 되고 있는 것도 분수와 철학이 없는 선진국 흉내 내기와 주체성을 갖지 못한 허장성세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저마다 기질과 독특한 환경을 살아가는 공동체라면 거기에 걸맞는 시민정신을 고취할 지향성을 제시하고, 자긍심과 포부를 갖는 유대감을 일깨워주는 표상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어릴 적 대도시를 처음 찾았다가 그곳 시청 정문 곁에 동판으로 새겨 놓은 시민헌장을 한참이나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전쟁과 도시집중의 혼란 속에서 급성장한 도시민의 긍지와 화합을 생각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시민기질과 긍지를 강조한 문장들이 잘 짜여 진 내용이었다.

꼭 시민헌장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곳에 계시해야 할 규정도 없겠지만 적어도 수만 수 십만이 서로의 고락과 상생을 인연으로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라면 함께 바라보고 긍정해야 할 가치기준과 슬로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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