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은 잠언에서 말한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그러나 10대들을 훈계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수원에서 30대 남성이 길거리에 침을 뱉고 시끄럽게 떠들던 고교생들을 훈계했다가 5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을 맞고 숨진 사건이 있었다. 평택에서는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훈계하는 이모(67세) 할머니를 20대 청년이 벽돌로 내리쳐 죽게 만들었다.
이럴 때보면 과거 우리 어머니들이 귀에 못이 박히게 하시던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釘) 맞는다. 나서지 마라”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어떻게 보면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교훈처럼 들리지만 숨은 의미는 그런 게 아니다. 옛날 농경사회의 특징은 공동체의 대동단결이었다. 구성원들이 단합된 힘으로 두레를 형성하여 농사일을 했기 때문에 어느 누가 톡톡 튀는 행동을 하게 되면 공동체의 와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이를 경계하기 위한 교훈이었다. 그래서 우리네 어른들은 톡톡 튀는 사람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비행에 대하여 눈 감아 버리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훈계한답시고 나섰다가 봉변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잘못을 나무라고 꾸짖는 어른이 있었다. 어른이란 사회적으로 덕망을 갖춘 존경받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었다.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같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일부분으로 여길 뿐이다.
지난 9월 4일, 한 식당에서 70대 노인이 담배를 피우자 80대 노인이 이를 나무랐다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신문의 가십거리로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