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우산
버려진 우산
  • 거제신문
  • 승인 201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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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얼마 전에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났는데 못 보던 배낭을 가지고 계셨다. 살펴보니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이커의 배낭이었다.

설마 팔순을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가 그걸 샀을 리는 없고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모 중학교 교통지도를 하다가 애들이 학교 담 뒤에 버려놓은 것을 주웠는데 겉보기에 아무 흠이 없고 깨끗해서 씻어서 쓰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마시라 했는데 어머니 말씀이, 헤진 곳 없는 멀쩡한 물건을 어떻게 버리느냐고 앞으로 20년은 더 사용해도 될 것 같다하시면서 요즘 학생들은 물건 귀한 줄 모른다고 한탄을 하셨다.

나 역시 어머니 말씀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은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비슷한 일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았을 때 일이다. 오전에 비가 주절주절 내리더니 학생들이 하교할 즈음에 비가 그쳤다. 학생들이 돌아간 교실을 한번 돌아보려고 교실에 들어갔더니 오전에 등교할 때 학생들이 가져왔다가 비가 그치자 그대로 두고 간 우산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아서 다음날 학생들에게 자기 우산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 우산을 도로 가져가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 중에서 어떤 우산은 수 만원이 넘는 유명 메이커 우산도 있었다. 대한민국 정말 살만해졌구나 싶었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세대는 비닐우산 세대였다. 한 집에 우산 한 개만 있어도 살만한 집이었고 그것도 없어 비 오면 비료 포대 뒤집어쓰고 학교에 가거나 짚으로 만든 도롱이 같은 것을 쓰고 다니던 세대다. 그 시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비오고 난 뒤 우산을 버리고 가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즘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거의 전부 전자기기를 가지고 노는데 그 학생들이 가지고 노는 전자기기는 거의 최신형이다.

그러다보니 구형의 기기를 가진 학생은 당연히 소외감을 느끼고 부모에게 신형을 사달라고 조르고, 부모는 쉽게 신형으로 안 바꿔주니 아이는 어딘가에 던져버리거나 일부러 고장 내고는 집에 가서 잃어버렸다 하고 새 것으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마 우리 어머니가 주운 배낭을 버린 아이도 집에 가서는 잃어버렸다고 핑계를 대고 새 물건을 샀을 것이다.

내 어린시절, 놀이도구가 고무줄, 딱지, 구슬, 공깃돌이 거의 전부인 시절이었다. 지금 문방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선은 일 년이 지나가도 한 번 만져볼까 말까 한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어머니의 옷장을 뒤지다가 엄마가 숨겨 놓은 풍선을 발견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색깔은 다양하지 못하고 좀 밋밋한 아이보리 색이었으나 풍선이 귀한 시절이라 나는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기뻤다.

아마 어머니는 나 몰래 남동생에게 풍선을 주려고 했을 거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며 어머니의 숨겨놓은 풍선을 찾아낸 기쁨에 나는 온 동네 애들을 모아 풍선을 불고 놀기로 했다. 동네 아이들은 다들 내가 나눠준 풍선을 하나씩 받아들고 좋아라 했다. 그 덕에 나는 의기양양해졌고.

그런데 그 풍선은 정말 잘 불어지지 않았다. 있는 힘껏 불어도 아주 약간만 늘어날 뿐 풍선은 우리 모두의 볼이 아릴 때까지 커지지 않았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귀한 풍선을 찾아낸 기쁨에 귓볼이 아픈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 작은 참외만한 풍선을 가지고 온 동네 구석구석을 흔들고 다녔다. 별 놀이를 하지 않아도 흰 풍선을 손에 들고 흔들며 동네를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웠다. 해질녘 엄마들이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우리들 각자를 불렀을 때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풍선을 본 어른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와 우리 동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많이들 혼났다. 난 그때 정말로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풍선이 뭐 그리고 중요한 것이라고 풍선 불고 논 것 때문에 어른들한테 이렇게 너도나도 혼이 나는지. 한동안 그것이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나는 문득 그 풍선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 어른들이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이해가 갔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어머니가 장롱에 깊이 숨겨놓은 것은 풍선이 아니라 그 당시 보건소에서 가족계획의 일환으로 집집마다 나눠준 콘돔이었다.

귀한 풍선 대신에 콘돔을 불고 놀았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닌데, 나는 바로 지난달에도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우산을 구하러 빈 교실에 갔다가 너무도 쉽게 우산 하나를 구해가지고 왔다.

2013년 거제도, 여전히 아이들은 사물함에, 신발장에 책상 옆에 우산을 걸어놓고 가져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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