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과 성장의 동력
발전과 성장의 동력
  • 거제신문
  • 승인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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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물은 물, 산은 산이라 함은 대상을 존대(尊待)하고자 하는 뜻이 깊다. 남자와 여자의 다른 형태가 만나서 부부가 된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다. 그만큼 부부가 되면 누구나 다투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요즈음은 ‘여성상위 시대’라고도 한다. 필자가 남자라서 대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남자의 기가 많이 위축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드라마를 한편 보아도 여자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흔하다

여자에게 순종형이라는 말은 시대에 따라서 퇴색해 보일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현모양처란 말은 구시대적 발상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비해서 억척형 여성이라든지 지성미가 뛰어나고 생기발랄한 여성상은 과히 흠모의 이유가 충분히 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여성일방적인 급진적 매너는 외면을 당하는 심리도 우리들은 함께 이해하게 된다. 어차피 세상은 세태 역시 무상하다고 보면 변하지 않고 제자리 있는 것이 큰 부담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은 물, 산은 산의 불변적 요소는 그 물과 산이 지닌 내면에 의한 혼의 문제다. 그래서 더더욱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란 말씀을 기억한다. 변하되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혼이요 정신이다.

아니,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절이나 혼절은 그 한 예가 될는지 모른다. 형태가 급진적으로 변하여 좋을 것도 있지만 섬뜩한 일이 더 많다. 한 예로, 혁명이란 것은 필요 불가결한 순리를 넘어 피를 부르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희생의 순절을 다하지 못한다.

형태에 순응하고 각자의 모양에 자존심을 가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 과의 관계에서 살아간다. 개성을 가진 자존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자칫 오만과 독선에 홀려서는 안될 일이다. 생긴 대로 살아가는 삶이 결코 나약함이 아니듯이 우리들은 남과의 관계에서 더한 용기와 행복을 맛보게 된다.

누구도 존재를 개체나 형상에 한계를 지우지 않으며 물물마다 그 속에 깊이 지닌 혼과 정신을 믿고 살고 있다. 혼과 정신은 끝내 하나로 이어지며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된다.

환경이든 사람이든 우리들은 관계에서 살아남게 된다. 이러한 생존적 관계에서 남을 나와 같이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서로 믿고 실천하는 일이 사랑이다.

하늘이 하늘로 남고 땅이 땅으로 버틴다면 아무런 관계와 배려의 의미가 없다. 가뭄에 비는 하늘이 땅을 배려하고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다른 하늘과 땅이 사랑과 배려와 소통 없이 자기 존재만 내세운다면 천지의 생기와 만물의 호응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의 소통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일은 각자의 최고 인격(품격)을 발휘하는 데서 비롯된다. 형편이 고정불통이 되어 타협은 전혀 없고 아집만 내세운다면 발전이 없는 퇴보와 고통밖에 예감할 길이 없다. 하지만 포용의 그릇을 아무데나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발전과 성장의 동력은 서로 다른 당파의 품격을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며 오로지 정신과 혼의 무한한 능력을 높이고 수련하는데 있다. 섣불리 남을 설득하려 들고 자기 주장에만 급급 하려 들면 창조적인 관계개선에 이르지 못한다.

목적 또한 하나의 정점을 향하여 서지 못한다. 오늘날 정치지도자의 현실이 상대편에 모든 탓을 돌리는데 민의의 진실을 속이고 있지나 않을까 지극히 염려스러운 것이다. 

편당과 당파로 혼란에 몰두하기보다는 여자는 남자보다 받아들이는 쪽에 그 구조적 가치가 확연해 있듯, 자파자당의 뚜렷한 개성을 오로지 반성과 성찰로 연연하는 곳에 상생과 윈윈의 매력이 있지 않는가!

배려와 사랑으로 오래 참는 여성과 모성애의 존엄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사회의 소아적 이기적 병폐는 치유와 반성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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