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 이상해서 애들 얼굴을 일일이 확인해 보니 우리 반 애들 사이에 웬 낯선 학생 한 명이 졸업식장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너는 누구냐 했더니 애들 말이 이웃 학교 다니는 자기들 친구라 하며 서로 마주보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오지 않은 A학생의 친한 친구에게 왜 A가 졸업식에 안 나타나냐 물었더니 그 애도 배실배실 웃을 뿐 답을 피했다.
이윽고 졸업식이 시작되었지만 내가 기다리는 A학생은 끝내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식이 시작되어도 아까 우리 반 학생들 사이에 앉아있던 그 이웃학교 학생이라는 녀석은 나갈 생각을 안 하고 계속 졸업식장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녀석 봐라! 남의 학교 졸업식에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졸업생인 것처럼 있다니. 나는 슬슬 화가 났다. 오라는 애는 안 오고 엉뚱한 낯선 녀석이 앉아 있다니. 그 녀석 참 얼굴도 두껍다.
졸업식 내내 그 낯선 녀석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일단 식은 끝내고, 학생들이 다들 자기 교실로 돌아와 졸업장과 상장을 받는 마지막 담임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낯선 녀석이 또 우리 반 애들을 졸졸 따라 교실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요것 봐라. 교실까지 따라 오네. 이것이 아무리 우리 애들 친구라지만 남의 교실까지 들어오는 것은 너무 한데. 한번 야단을 쳐봐?' 이렇게 생각한 것 까지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성질 급한 나는 생각을 그대로 내뱉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우리 반 애들에게 두고두고 웃으며 얘기할 거리를 제공하고야 말았다.
"너는 누구니? 누군데 우리 반 까지 따라 들어오는 거야? 지금 우리 반 애들과 얘기할 마지막 시간이니 너는 좀 나가 있어 줄래?"
그 순간 그 학생을 비롯한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 책상을 두드리며 박장대소하고 웃는 애도 있었다. 영문 몰라 하는 나를 보던 한 학생이 슬쩍 귀띔을 했다.
"선생님, 쟤가 바로 A예요."
"뭐라고? 너 장난치니?"
나는 진심으로 그 이상한 녀석이 A라는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A가 지난겨울 방학 때 양악 수술을 하고 코를 세워서 선생님이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A는 평소에 자신의 턱이 길고 코가 약간 삐뚤어져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설마 방학 동안 수술을 싹하고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는 졸업식에서 그 아이를 다른 아이로 착각하는 생쇼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애를 교실에서 내좇을 뻔했다.
말로만 듣던 성형 열풍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고3 여학생들이 수능을 끝내고 성형수술을 해서 담임인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경우는 흔히 있어서 익숙하나 남학생까지 성형 대열에 합세하여 고3 1년을 지지며 볶고 지낸 담임이 학생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에 나는 허탈감을 느꼈다.
요즘 바야흐로 고3 입시도 끝나고 성형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미 내가 가르치는 몇몇 여학생들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학교에 등교했고 앞으로 방학만 하면 알바해서 여기저기를 뜯어 고치겠다는 애도 있고, 심지어 내 얼굴을 보면서 성형 견적을 내주는 애도 있다. 내 얼굴은 한마디로 견적이 안 나온단다. 아이고, 얼마나 다행인지. 성형하고 싶어도 견적이 안 나와서 못한다.
달 뒷면에까지 우주선을 띄우고 화성탐사선을 발사하는 이 마당에 외모를 고치고 겉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이 원시적인 사고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학교에서는 절대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확 뜯어고쳐 그 힘든 고3을 동고동락하면서 지낸 제자의 얼굴도 못 알아보게 하는가.
수능을 마치고 고전을 읽겠다든지, 무슨 작가의 작품을 섭렵하겠다든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은 이미 오래다. 그저 알바해서 성형 대열에 합류하고 어디 놀러가겠다, 뭐 사겠다는 말 뿐이다. 물질세계의 발달과 정신세계의 발전이 반비례하는 것인지, 되레 후회하는 우리 아이들의 사고력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외모가 아닌 정신세계를 가꾸는 것의 중요성을 길러 주어야할 때가 아닌가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외모를 중요시하는 풍조에 가장 많이 노출되고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바로 미디어 매체다. 매스컴이나 다양한 매체에서도 이제 미인타령은 그만 했으면 한다. 그래서 나 같이 일 년을 봐 온 제자에게, '너는 누구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