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문제의 심각성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메시지 전달

"나는 생각한다. 이 많은 쓰레기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진정 획기적인 방안이나 방법들이 없을까?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그렇게 살아가는지…."
발칙한 소녀가 있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또래들보다 순수하고 가슴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다. 황유라다.
이제 막 고등학교 1년을 지나고 있는, 소녀티가 물씬 풍기는 앳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유라의 마음 속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유혹이 생긴다.
지난 15일 오후 2시부터 거제시청소년수련관에서 진행된 '2013 거제시 자원봉사자 한마음 대축제' 행사장 로비에 생소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정크아트'라고 하는 생활속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주재료로 만들어진 미술작품들이다.
전시된 20여 점의 정크아트 작품들을 만든 주인공은 전업 예술가가 아니라 현재 거제해성고등학교(교장 진선진 신부)에 재학 중인 황유라(1년) 학생이다.
매스컴을 통한 귀동냥으로 인지하는 정도에 불과한 정크아트에 대해 유라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는 짓궂은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산업혁명 이후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예술가들이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된 것이 정크아트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대답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쓰레기로 표현하되 흉측한 모습보다는 반대로 아름답게 보여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처음에 큰 뜻없이 만들다보니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더 알리고 싶어 본격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유라의 답변에 지식이 부족한 기자가 오히려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 친구 더 궁금해지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한창 놀기 좋아해야 할 나이에 또래들과 다른 무언가에 심취한 유라의 정신세계는 어디를 지향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연결고리는 역시 정크아트였다. 봉사활동을 어릴 때부터 해온 유라가 정크아트를 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으로 이끈 것은 가족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한 유라의 어머니 정명희 씨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놀러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는 혼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10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된 유라의 봉사활동은 시간으로 따지면 100시간을 훨씬 넘고 있다. 또 유라가 하는 봉사활동은 규정된 틀에 매여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봉사에 대한 개념도 정립돼 있다.
"학교에서 인문학 강의를 통해 봉사의 개념은 받들고 섬긴다는 뜻이라고 배웠어요. 잘 어울리거나 공존하는 것들을 섬기는 것으로 활동의 중심을 자기에게 둔다는 것을 알았어요."
처음 유라가 강의에서 알게된 봉사의 개념은 자기중심적이라서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고 가치있는 일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개념이 확장됐다.

결국 정크아트도 자기가 좋아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고 전시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각성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사회봉사활동의 하나라는 개념으로까지 성장했다.
특히 대견스러운 것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되지 않고 사고 또한 유연하다는 것이다. 자칫 작품활동으로 인해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는데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작품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분인 공부도 하면서 해야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머물고 있었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 친구의 꿈이 도대체 뭔지 궁금해졌다. 역시 돌아온 대답은 어른인 기자마저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철학적이고 포용력 있었다. 처음에는 환경운동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정크아트를 하면서 수단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눈으로 보면 효과가 극대화되고 그런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정크아트를 넘어 다양한 장르가 복합되는, 친환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게 이제 유라의 꿈이 됐다.
중요한 것은 유라가 추구하는 이상이 세상이 정한 각 학문이나 영역별 이분법적 경계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통한 효과의 극대화에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가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결국에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보편적 인류애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크아트와 각 장르의 음악, 예술 등이 집합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정크아트 작품활동에 다양한 분야의 독서, 그리고 자신의 본분인 공부까지,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유라가 바꾸고 싶은 것은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인 세상'을 뒤집어엎고 싶다는 것이다. 유라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 생각은 작품 후기에 잘 나타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점퍼를 사오셨다.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던 점퍼로 정품의 10분의1 가격을 주고 구입해 오셨다. 어느 날 옷을 벗어놓고 교무실로 심부름을 갔다 오니 친구 세 명이 그 점퍼 옆에서 옥신각신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유가 '유라 점퍼는 진짜고 그 친구 점퍼는 가짜'라며 한참동안을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로 진짜 점퍼를 입은 그 친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했다. 나는 내 점퍼가 가짜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되돌아오는 반응이 더 기가 찼다. '역시 유라는 착하다. 진짜 점퍼를 입고도 친구를 위해 가짜라고 하다니'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쩜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인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진짜가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을 꿈꾸는 유라.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거제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친구인 것만은 분명하다.